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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사건이라고 아시나요???

- 출처



음....갑자기 생뚱맞죠???ㅡㅡ;;

"백마사건"....
일본군의 장교가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로 위안부에 끌고온 사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이 강제성........

네덜란드인 위안부 강제연행 사건(일명 백마사건)
일본 남방군 담당의 제16군 간부 후보생대가 17세 이상의 네덜란드인 여성을 스마란 위안소에 연행하여 적어도 35명 이상에게 매춘을 강제한 사건이다. 1992년 아사히신문사의 조사로 자바섬 스마란에서 네덜란드인 여성을 강제연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1944년 2월25일 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여성 가운데 18살에서 26살까지는 모두 수용소 사무소에 집합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일본군 장교가 이들에게 가족구성 등에 관해 질문을 했다.
다음달 그들 중에서 뽑힌 여러 명의 여성은 스마란으로 연행돼 호텔방에 분산수용됐다. 방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면 구타를 당했다. 두 명의 소녀는 도망가려 했으나 살해됐고 한 명의 소녀는 키니네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1944년 3월 스마란 주둔지 사령관A(겸 남방군 간부 후보생대 대장)가 <제16>군 사령부와의 묵계로 스마란 억류소에 수용되고 있는 약 1백 명의 네덜란드 여성을 풀어서 이를 시내 4개소에 분배하여 위안소를 개설했다."고 돼 있다. "개설에는 주로 남방군 간부후보생대의 B소좌가 참여했고 상사의 경고에 따라서 1,2개월 후에 폐쇄했다"라고도 돼 있다. 또 A대장의 재판은 따로 실행됐는데 그 '기소이유 개요'에는 "스마란의 각 수용소 및 안베라와의 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약 35명의 여성을 위안소에 숙박시켜 매음을 강제하며 강간을 하고 또 부당하게 취급한 책임"이라고 돼 있다.
스마란 위안소의 경우 외에 다른 1건은 죤벨 헌병분대사건으로 '기소이유 개요'에 의하면 동 분대의 C헌병 대위는 네덜란드 국적의 여성을 '강제로 위안소에 감금하여 매음시켰다'라고 한다.

아사히 신문 1992년 8월 30일자 기사에 의하면,
이 2사건에 관해서 네덜란드 국립공문서관 장서의 재판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2월에 연행된 여성은 35명, 3월에 개설된 위안소는 장교클럽 스마란 클럽, 히노마루 클럽, 청운장의 4개로 경영자의 신분은 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연행은 뒤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지원 형식의 문서를 받고 있었지만, 적게 봐서 25명에 관해서는 "기만, 폭력, 협박을 사용함으로써 억류소에서 부인이나 소녀들을 연행했다.'라고 결론져졌다. 판결은 1948년에 나왔으며 부녀자를 강제매춘에 연행한 죄, 매춘강제죄, 강간죄, 억류자를 부당하게 취급한 죄 중의 하나 또는 복합으로 적용되어 상기한 B소자가 사형, 부관 1명과 남방군 예비 사관학교 소속의 4명(중 2명은 군의)이 징역 2년에서 16년, 위안소 경영자 4명이 징역 7년에서 20년, 사정관과 조장 각 1명이 무죄로 되었다. 또 다음해에 A는 징역 12년의 판결을 받았다.


스마란 위안소는 1944년 2월 신설되었는데, 제16군 간부 호보생대는 17세 이상의 네덜란드 여성을 스마란 위안소에 강제 연행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억류인이 필사적으로 이에 대항하여 일본 육군성으로부터 포로 조사차 방문한 오다지마 카오루 대령의 귀에 들어갔고, 일본군 중앙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모른 척 덮어 버릴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일본군은 국제여론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2개월 후 이 위안소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일본군위안부로 강제 연행된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은 일례이다. 재판에서 일본군 피고의 일부는 네덜란드 여성에게 “매춘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얘기하지 않고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된다고만 말했다”라고 밝혀 이들을 속여서 연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네덜란드인 위안부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정부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그 총수가 200~3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자료출처;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종군위안부 자료집, 아사히 신문 1992년 7월 21일자 기사)

얀 러프 루헨 할머니의 증언
얼마 전, 푸른 눈의 네덜란드인 일본군위안부 "얀"할머니의 증언이 소개되어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얀 할머니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시기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9살 때인 1942년 3월 일본이 자바섬으로 진격해 들어와, 다른 네덜란드인들과 함께 강제 수용을 당했다. 얀 할머니는 수용소 생활을 2년을 한 뒤 1944년 일본군에 의해 '위안소'에 끌려가 3개월간에 걸쳐 성폭행당했다. 1994년 위안부의 경험을 책과 다큐멘터리로 펴냈으며, 지난 2000년과 2001년 방송에서도 증언하였다. -참고사이트.독도수호지기-

초창기 이 사건은 명백한 강제징용증거로 좌익들에 의해 사용됐지만
지금은...뭐 우익들이 왜 아까운 장교를 죽였냐하면서 나불되는 사건으로
무마되고 있다고 하네여.....ㅡㅡ;;;



음.....왠지모르게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식은것 같네여....
저만 그럴수도 있지만...ㅡㅡ;;;

얼마남지 않은 인생..그나마 빨리 해결되고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12-08-10 : 일본군위안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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