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참전했던 한국과 전범국인 일본의 다른점
베트남 참전했던 한국과 전범국인 일본의 다른점
베트남 정부는 '우린 승전국이다' 사죄는 받지만 보상은 필요없다라고 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수 차례나 사과를 했습니다.
보상 의미로 수백억을 들여 현지 인프라 건설에도 보태면서도
베트남에게 국가적 사죄를 확실히 하고 보상도 해주겠다고 까지 했고,
아예 베트남정부와 공동으로 전쟁범죄조사와 진실 위원회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이 아예 기록 자체를 부정하고 사과를 안하는 일본 정부
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일본보다 수준이 차이나는지 사과문 중 하나를 알려드립니다.
'몆번이나 사괴를 수차례해도 턱없이 모자라다' - 김대중 대통령
[베트남] 한국은 베트남전 양민학살 사과했습니다.
1999년 한국은 베트남과 공동으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를
공동 설립하고 강정구,한홍구를 중심으로한 조사에 들어간다
그동안 미국정부에 전달된 100여종의 보고서와 20장의 사진을 통해 총3건의 진실을 찾아내게 된다.
[한국군의 치욕]
1.<퐁니*퐁넛 사건:68년2월12일 쿠앙남성 디엔반현>
해병 청룡사단 제2대대 6중대가 베트콩의 마을로 오인
81mm 박격포로 마을을 포격한 사건으로 총69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원인으로는 보고서를 중심으로 기술하면
마을주변의 베트콩의 잦은 출연과 위장으로 인해 전사자3명 부상자14명이 발생할정도로 피해가 심했던점
마을 입구에 부비트랩을 설치로 인해 부상자의 속출로 인한 이성의마비
마을에 숨어든 베트콩의 저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 이로인해 베트콩마을임을 확신했던점
등이다. (국군측 사상자에는 미해병대원2명이 포함된다.)
2.<푹미사건: 쿠앙남성 디엔반현>
사상자 22명 베트콩오인으로 인한 사건
3.<홍차우사건:쿠앙남성 디엔반현>
매복중 베트콩 오인사상 한국 소환후 사형 선고 이후 감형되어 무기징역으로 15년 복역
그밖에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다는
빈호이사(131)/타이빈(380) 사건은 소문으로만 존재할뿐 사실여부를 확인할수없었다.
이에대한 한국정부의 조치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간,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하였다(이후 대부분이 형집행정지와 감형등을 받았다)
*전범행위자 자체 집행(감형이 이뤄지긴 했다만)*
이후
김대중대통령은 2000년 베트남 국빈방문중 국민에게 공식사과를 했다
노무현대통령은 2004년 호치민묘지를 참배하며 공식사과했다.
2004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한화갑 민주당대표는 2006년당시 베트남인에게 사과하였다
2009년도 이병박대통령이 베트남 국빈방문당시 사과와함께
베트남유공자를 한국의 참전유공자와 함께 동등대우를 한다고 했지만
당시 이를 승전으로 생각했던 베트남인들의 강력반발과 외교부의 항의로
당시 유명환장관이 직접 가서 베트남정부에 사과했습니다.
진상조사와 사과후
한국에서는 참전동지회등에서 강하게 반발하였으며 이를 취재하던
한겨레,mbc토론등에 일부가 사무실 난입을 하기도 했다.
[ 한국군의 활동사항 ]
한국군은 남베트남의 지원자격의 파병이었던 만큼
전쟁적 지원뿐만 아니라 대민지원사업도 함꼐 펼쳐나갔다
남베트남의 민간인 보호뿐 아니라
대민진료 352만3364명
식량 1만9640톤지원
의류 46만1764점지원
농기구 6406대 제작
가옥및 교실3319동건설
교량 132개 건설
도로 394km건설
태권도보급 90만2060명
경로및어린이 잔치 6848회
연예공연 2304회. 의 활동을 하였다
많은 한국군에 희생을 통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민간인이 희생당한 부분에서는 마음의 무거움을 지울수없다.....
전쟁기간중 확인된
민간인 사망자는
베트남-158만1천명
(이 중에서 베트남정부가 한국군 양민학살 피해자로 주장하는 건 5천명 정도)
캄보디아-70만명
라오스-5만명 등이다
<병력>
남베트남(1968년) - 북베트남(1968년)
남베트남:65만명 - 북베트남:34만명
미국:55만3천명 - 중국:17만명
대만민국/타이/필리핀:6만1800명 - 소련:3천명
호주:49968명 - 북한:3백명
사망합계:28망5천831명 - 사망합계:117만7천명
부상자합계:149만명 - 부상자합계:60만4천명
[ ypa님의 글을 인용]
베트남전 을 이용하는 부류는 크게3가지가 있다.
1.북베트남인이다
이는 당연한 행동으로서 전쟁수행중 남베트남인에게 공포심을 심어
미군이나 한국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수행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것처엄 빈호이사 사건이나/타이빈 사건등 소문으로만 무성하지만
2000년 진상위원회에서 밝히지 못한것처럼 자료와 증거등에서도 진실여부를 정확히
가려내야 그에 합당한 반성이 생길수 있을것이다.(미군측의 100여종의 보고서에서
한국군에의한 사건은 총 3건으로 밝혀졌다)
2.한겨레등을 위시한 좌파지식인들이다.
그동안 쉬쉬하며 밝히지 못한 사건들을 수면위로 용기있게 올린것은 지당한 일이지만
정확한 자료와 진상조사 없이.무차별적으로 선정적 제목들을 뽑아내며
<아 그곳은 지옥> <한국군은 너무 잔인했다>라는 타이틀을 뽑아 무차별적으로
기사로 내보냈지만 그중 베트남정부와의 공동조사를 통해 밝혀진 진실은 단3건뿐이며
당시 베트남인들의 반응은 승전국에 대한 패전국의 호들갑 정도로 비쳐졌다.
이는 반미면 반독재면 모든지 가능하다는 사고에서 비롯된듯 하다
(노무현대통령 사건때의 보도행태를 보면 더욱더 분노하게끔 만드는
주체는 좌판언론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독가스 살포와 융단폭격 등으로 대변이 되는 조직적 학살
이 있었다는 기사들이었다.........................
3.일본애들
베트남전에 “귀로만든 목걸이”등의 일본측에 의도적으로 왜곡된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있다. 이는 당연히 2차대전시 자신들의 선조들이 저질른 만행을 의식하여
너희들도 똑같다라는 식으로의 논리로 귀결되며
우스운 점은 이러한 논리에 한국의좌파와 일본의우익이 같은논조의 주장을
하고있다는 점이다.
(유투부 ~ 위키피디아를 위시한 일본인들의 “한국인날조”설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http://blog.naver.com/seoul7910?Redirect=Log&logNo=40101081876 =>
위에 사이트 같은 것들이 대표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한겨레의 선정적 기사들을
무차별로 게재하고 있는 일빠들이다.
남베트남과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된 한국군이 당시
민간인을 100%보호 했다거나 모두가 목숨을 걸고 임했다고는 보지도 않을 뿐더러
불가능함을 안다
베트남전쟁의 특수성상 이전과는 다르게 민간인과 군인의 구분히 명확하지 않고
(이는 미군의 가장큰 패전요인이다.)
현재 미군의 아프가니스탄파병 상황처럼 팀킬 혹은 민간인속에 숨어든 적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성을 잃을수 있었던 상황은 부지기수 였을테니까..............
하지만 이를 통하여 자신의 신념이나 목적에 이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http://blog.naver.com/zixiace/10118518379
대통령도 “미안해요 베트남” (캡처)
베트남전 종전 이후 첫 ‘사과’ 발언… 300만달러 들여 민간인 학살피해 지역에 병원건립도
2001년08월28일 제374호
“우리는 불행한 전쟁(베트남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김대중 대통령이 3년 전의 ‘유감’ 발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에 관하여 베트남쪽에 ‘사과’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 8월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천득렁(Tran Duc Luong)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한국속담이 있듯, 과거의 불행이 있었기에 우리 한국은 베트남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이해와 협력을 구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번 사과로 끝날 일 아니다”
김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단히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낸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상임대표 이해동) 관계자들도 이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보수진영의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을 굳이 꺼낼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베트남전 참전에 관하여 무엇을 사과한 것일까.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이 입은 고통’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은 이를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국빈만찬 자리에서 했던 또 한 가지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천득렁 주석에게 “베트남 중부 5개성에 병원을 지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부 5개성’이란 쿠앙응아이, 쿠앙남, 푸옌, 빈딘, 칸호아로 베트남전 당시 청룡·맹호·백마부대가 베트콩 수색·소탕작전을 펼쳤던 곳이다. 총 300만달러 규모의 예산이 책정된 이 병원건립 사업은 내년부터 약 3개년에 걸쳐 진행된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에도 중부 5개성에 200만달러를 들여 40개의 초등학교를 지어주기로 하고 현재 20개교 건립을 완공한 상태다.
베트남 중부 5개성은 한국과 베트남의 ‘어두운 과거사’를 상징한다. <한겨레21>이 지난 99년 5월부터 집요하게 보도하기 시작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기사들은 중부 5개성의 피해자들과 그곳에서 작전했던 한국군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 발족된 ‘베트남전 진실위원회’는 평화음악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과여론’을 조직하면서 정부를 압박했다. 대통령의 ‘사과발언’과 중부 5개성 지원사업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호치민에서도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 나온다
물론 한계는 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한국현대사)는 “한번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일본처럼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외교적으로 과시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사과를 하려면 우리가 어떤 고통을 줬는지 철저히 규명한 뒤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대통령만의 사과가 아닌 범국민적 사과운동이 필요하다.” 대척점에 선 비판도 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김 대통령의 주장은 ‘미국 용병으로서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운동권 주사파의 논리와 흡사하다”면서 “고엽제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경솔했던 말”이라는 논평을 냈다. 또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는 6·25 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서 북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참전전우회 등 일부 참전군인 조직들도 “망언”이라며 반발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국내 인권단체들의 베트남행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기독교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위원장 김정명)는 10월경 베트남 중부 5개성 지역을 방문하여 ‘민간인 피해’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베트남쪽도 소극적이지만은 않다. 호치민의 ‘사이공음반사’는 한국의 ‘베트남전 진실위원회’가 1년 전 제작했던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올해 말에 출시할 계획이다. ‘사이공음반사’ 응웬 캇 비(Nguyen Khat Vi) 사장은 “음반출시가 베트남사회에 커다란 공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한국의 인도주의 평화운동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원개발과 정보기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천명했다. 양국 공동으로 대규모 유전개발에 성공했고, SK텔레콤 등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은 CDMA 사업진출을 위한 베트남 정부의 승인을 따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가 이뤄진다면, 두 나라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노대통령 “베트남에 마음의 빚 있다” (캡처)
편집 2004.10.10(일) 19:11
한국군 참전 우회언급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아셈) 참석 일정을 마치고 베트남에 국빈으로 머물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하노이에서 천득렁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여는 등 경제통상 외교 행보를 계속했다.
이날 오후(이하 한국시각) 하노이 시내 주석궁에서 2시간 남짓 열린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주로 논의했다고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한국은 베트남의 오랜 고난의 역사를 보며 동질성을 갖고 상호 존경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해,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핵물질 실험과 관련해 “핵무기와 관계가 없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런 실험을 할 수도 없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열린 양국 기업인들과의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국외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자본과 금융을 뒷받침하는 국내 시스템이 필요할 것으로 잠정 판단하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에 돌아가 기업인들이 조언을 해주면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 와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금융과 자본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적극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베트남 경제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홍강’(하노이를 흐르는 강)의 기적을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첫 일정으로 하노이 중심가에 있는 호치민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한국 대통령의 호치민 묘소 참배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묘소입구에서 헌화하는 데 그쳤다. 노 대통령은 이날 묘소 앞에서 헌화한 뒤 내부로 들어가 유리관에 안치된 호치민의 주검 앞에서 10여초 묵념을 올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96년 한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지만 묘소를 찾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은 11일에는 베트남 호치민으로 이동해 현지 우리 기업인과 교민들을 만난 뒤 12일 귀국할 예정이다. 하노이/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베트남 정부는 '우린 승전국이다' 사죄는 받지만 보상은 필요없다라고 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수 차례나 사과를 했습니다.
보상 의미로 수백억을 들여 현지 인프라 건설에도 보태면서도
베트남에게 국가적 사죄를 확실히 하고 보상도 해주겠다고 까지 했고,
아예 베트남정부와 공동으로 전쟁범죄조사와 진실 위원회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이 아예 기록 자체를 부정하고 사과를 안하는 일본 정부
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일본보다 수준이 차이나는지 사과문 중 하나를 알려드립니다.
'몆번이나 사괴를 수차례해도 턱없이 모자라다' - 김대중 대통령
[베트남] 한국은 베트남전 양민학살 사과했습니다.
1999년 한국은 베트남과 공동으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를
공동 설립하고 강정구,한홍구를 중심으로한 조사에 들어간다
그동안 미국정부에 전달된 100여종의 보고서와 20장의 사진을 통해 총3건의 진실을 찾아내게 된다.
[한국군의 치욕]
1.<퐁니*퐁넛 사건:68년2월12일 쿠앙남성 디엔반현>
해병 청룡사단 제2대대 6중대가 베트콩의 마을로 오인
81mm 박격포로 마을을 포격한 사건으로 총69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원인으로는 보고서를 중심으로 기술하면
마을주변의 베트콩의 잦은 출연과 위장으로 인해 전사자3명 부상자14명이 발생할정도로 피해가 심했던점
마을 입구에 부비트랩을 설치로 인해 부상자의 속출로 인한 이성의마비
마을에 숨어든 베트콩의 저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 이로인해 베트콩마을임을 확신했던점
등이다. (국군측 사상자에는 미해병대원2명이 포함된다.)
2.<푹미사건: 쿠앙남성 디엔반현>
사상자 22명 베트콩오인으로 인한 사건
3.<홍차우사건:쿠앙남성 디엔반현>
매복중 베트콩 오인사상 한국 소환후 사형 선고 이후 감형되어 무기징역으로 15년 복역
그밖에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다는
빈호이사(131)/타이빈(380) 사건은 소문으로만 존재할뿐 사실여부를 확인할수없었다.
이에대한 한국정부의 조치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간,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하였다(이후 대부분이 형집행정지와 감형등을 받았다)
*전범행위자 자체 집행(감형이 이뤄지긴 했다만)*
이후
김대중대통령은 2000년 베트남 국빈방문중 국민에게 공식사과를 했다
노무현대통령은 2004년 호치민묘지를 참배하며 공식사과했다.
2004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한화갑 민주당대표는 2006년당시 베트남인에게 사과하였다
2009년도 이병박대통령이 베트남 국빈방문당시 사과와함께
베트남유공자를 한국의 참전유공자와 함께 동등대우를 한다고 했지만
당시 이를 승전으로 생각했던 베트남인들의 강력반발과 외교부의 항의로
당시 유명환장관이 직접 가서 베트남정부에 사과했습니다.
진상조사와 사과후
한국에서는 참전동지회등에서 강하게 반발하였으며 이를 취재하던
한겨레,mbc토론등에 일부가 사무실 난입을 하기도 했다.
[ 한국군의 활동사항 ]
한국군은 남베트남의 지원자격의 파병이었던 만큼
전쟁적 지원뿐만 아니라 대민지원사업도 함꼐 펼쳐나갔다
남베트남의 민간인 보호뿐 아니라
대민진료 352만3364명
식량 1만9640톤지원
의류 46만1764점지원
농기구 6406대 제작
가옥및 교실3319동건설
교량 132개 건설
도로 394km건설
태권도보급 90만2060명
경로및어린이 잔치 6848회
연예공연 2304회. 의 활동을 하였다
많은 한국군에 희생을 통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민간인이 희생당한 부분에서는 마음의 무거움을 지울수없다.....
전쟁기간중 확인된
민간인 사망자는
베트남-158만1천명
(이 중에서 베트남정부가 한국군 양민학살 피해자로 주장하는 건 5천명 정도)
캄보디아-70만명
라오스-5만명 등이다
<병력>
남베트남(1968년) - 북베트남(1968년)
남베트남:65만명 - 북베트남:34만명
미국:55만3천명 - 중국:17만명
대만민국/타이/필리핀:6만1800명 - 소련:3천명
호주:49968명 - 북한:3백명
사망합계:28망5천831명 - 사망합계:117만7천명
부상자합계:149만명 - 부상자합계:60만4천명
[ ypa님의 글을 인용]
베트남전 을 이용하는 부류는 크게3가지가 있다.
1.북베트남인이다
이는 당연한 행동으로서 전쟁수행중 남베트남인에게 공포심을 심어
미군이나 한국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수행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것처엄 빈호이사 사건이나/타이빈 사건등 소문으로만 무성하지만
2000년 진상위원회에서 밝히지 못한것처럼 자료와 증거등에서도 진실여부를 정확히
가려내야 그에 합당한 반성이 생길수 있을것이다.(미군측의 100여종의 보고서에서
한국군에의한 사건은 총 3건으로 밝혀졌다)
2.한겨레등을 위시한 좌파지식인들이다.
그동안 쉬쉬하며 밝히지 못한 사건들을 수면위로 용기있게 올린것은 지당한 일이지만
정확한 자료와 진상조사 없이.무차별적으로 선정적 제목들을 뽑아내며
<아 그곳은 지옥> <한국군은 너무 잔인했다>라는 타이틀을 뽑아 무차별적으로
기사로 내보냈지만 그중 베트남정부와의 공동조사를 통해 밝혀진 진실은 단3건뿐이며
당시 베트남인들의 반응은 승전국에 대한 패전국의 호들갑 정도로 비쳐졌다.
이는 반미면 반독재면 모든지 가능하다는 사고에서 비롯된듯 하다
(노무현대통령 사건때의 보도행태를 보면 더욱더 분노하게끔 만드는
주체는 좌판언론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독가스 살포와 융단폭격 등으로 대변이 되는 조직적 학살
이 있었다는 기사들이었다.........................
3.일본애들
베트남전에 “귀로만든 목걸이”등의 일본측에 의도적으로 왜곡된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있다. 이는 당연히 2차대전시 자신들의 선조들이 저질른 만행을 의식하여
너희들도 똑같다라는 식으로의 논리로 귀결되며
우스운 점은 이러한 논리에 한국의좌파와 일본의우익이 같은논조의 주장을
하고있다는 점이다.
(유투부 ~ 위키피디아를 위시한 일본인들의 “한국인날조”설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http://blog.naver.com/seoul7910?Redirect=Log&logNo=40101081876 =>
위에 사이트 같은 것들이 대표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한겨레의 선정적 기사들을
무차별로 게재하고 있는 일빠들이다.
남베트남과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된 한국군이 당시
민간인을 100%보호 했다거나 모두가 목숨을 걸고 임했다고는 보지도 않을 뿐더러
불가능함을 안다
베트남전쟁의 특수성상 이전과는 다르게 민간인과 군인의 구분히 명확하지 않고
(이는 미군의 가장큰 패전요인이다.)
현재 미군의 아프가니스탄파병 상황처럼 팀킬 혹은 민간인속에 숨어든 적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성을 잃을수 있었던 상황은 부지기수 였을테니까..............
하지만 이를 통하여 자신의 신념이나 목적에 이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http://blog.naver.com/zixiace/10118518379
대통령도 “미안해요 베트남” (캡처)
베트남전 종전 이후 첫 ‘사과’ 발언… 300만달러 들여 민간인 학살피해 지역에 병원건립도
2001년08월28일 제374호
“우리는 불행한 전쟁(베트남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김대중 대통령이 3년 전의 ‘유감’ 발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에 관하여 베트남쪽에 ‘사과’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 8월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천득렁(Tran Duc Luong)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한국속담이 있듯, 과거의 불행이 있었기에 우리 한국은 베트남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이해와 협력을 구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번 사과로 끝날 일 아니다”
김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단히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낸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상임대표 이해동) 관계자들도 이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보수진영의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을 굳이 꺼낼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베트남전 참전에 관하여 무엇을 사과한 것일까.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이 입은 고통’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은 이를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국빈만찬 자리에서 했던 또 한 가지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천득렁 주석에게 “베트남 중부 5개성에 병원을 지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부 5개성’이란 쿠앙응아이, 쿠앙남, 푸옌, 빈딘, 칸호아로 베트남전 당시 청룡·맹호·백마부대가 베트콩 수색·소탕작전을 펼쳤던 곳이다. 총 300만달러 규모의 예산이 책정된 이 병원건립 사업은 내년부터 약 3개년에 걸쳐 진행된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에도 중부 5개성에 200만달러를 들여 40개의 초등학교를 지어주기로 하고 현재 20개교 건립을 완공한 상태다.
베트남 중부 5개성은 한국과 베트남의 ‘어두운 과거사’를 상징한다. <한겨레21>이 지난 99년 5월부터 집요하게 보도하기 시작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기사들은 중부 5개성의 피해자들과 그곳에서 작전했던 한국군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 발족된 ‘베트남전 진실위원회’는 평화음악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과여론’을 조직하면서 정부를 압박했다. 대통령의 ‘사과발언’과 중부 5개성 지원사업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호치민에서도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 나온다
물론 한계는 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한국현대사)는 “한번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일본처럼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외교적으로 과시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사과를 하려면 우리가 어떤 고통을 줬는지 철저히 규명한 뒤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대통령만의 사과가 아닌 범국민적 사과운동이 필요하다.” 대척점에 선 비판도 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김 대통령의 주장은 ‘미국 용병으로서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운동권 주사파의 논리와 흡사하다”면서 “고엽제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경솔했던 말”이라는 논평을 냈다. 또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는 6·25 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서 북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참전전우회 등 일부 참전군인 조직들도 “망언”이라며 반발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국내 인권단체들의 베트남행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기독교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위원장 김정명)는 10월경 베트남 중부 5개성 지역을 방문하여 ‘민간인 피해’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베트남쪽도 소극적이지만은 않다. 호치민의 ‘사이공음반사’는 한국의 ‘베트남전 진실위원회’가 1년 전 제작했던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올해 말에 출시할 계획이다. ‘사이공음반사’ 응웬 캇 비(Nguyen Khat Vi) 사장은 “음반출시가 베트남사회에 커다란 공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한국의 인도주의 평화운동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원개발과 정보기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천명했다. 양국 공동으로 대규모 유전개발에 성공했고, SK텔레콤 등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은 CDMA 사업진출을 위한 베트남 정부의 승인을 따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가 이뤄진다면, 두 나라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노대통령 “베트남에 마음의 빚 있다” (캡처)
편집 2004.10.10(일) 19:11
한국군 참전 우회언급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아셈) 참석 일정을 마치고 베트남에 국빈으로 머물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하노이에서 천득렁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여는 등 경제통상 외교 행보를 계속했다.
이날 오후(이하 한국시각) 하노이 시내 주석궁에서 2시간 남짓 열린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주로 논의했다고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한국은 베트남의 오랜 고난의 역사를 보며 동질성을 갖고 상호 존경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해,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핵물질 실험과 관련해 “핵무기와 관계가 없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런 실험을 할 수도 없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열린 양국 기업인들과의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국외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자본과 금융을 뒷받침하는 국내 시스템이 필요할 것으로 잠정 판단하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에 돌아가 기업인들이 조언을 해주면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 와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금융과 자본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적극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베트남 경제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홍강’(하노이를 흐르는 강)의 기적을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첫 일정으로 하노이 중심가에 있는 호치민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한국 대통령의 호치민 묘소 참배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묘소입구에서 헌화하는 데 그쳤다. 노 대통령은 이날 묘소 앞에서 헌화한 뒤 내부로 들어가 유리관에 안치된 호치민의 주검 앞에서 10여초 묵념을 올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96년 한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지만 묘소를 찾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은 11일에는 베트남 호치민으로 이동해 현지 우리 기업인과 교민들을 만난 뒤 12일 귀국할 예정이다. 하노이/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