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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꼼짝못할 '위안부' 증거, 유엔본부에 극비 보관돼 있다

- 출처



일본이 꼼짝못할 '위안부' 증거, 유엔본부에 극비 보관돼 있다
2012-03-02 13:45 (한국시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중국 여성이 버마(미얀마)에서 연합군 장교의 심사를 받고 있는 모습.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전쟁범죄 관련 극비 파일이 유엔본부 창고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파일은 400 상자 분량으로 관련 서류는 수십만장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인터넷매체 아트데일리(artdaily.org)는 이 파일이 극비문서로 분류돼 지난 60년 동안 유엔본부 건물에 보관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의 학자들은 이 파일을 온라인에 공개, 연구자료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유엔은 지금까지 극히 일부분만 열람을 허용했다.

극비문서의 원소유 기관은 전쟁범죄위원회(UN War Crimes Commission)다. 1943년 10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설치한 기관이다. 1945년 10월 유엔이 정식 발족되자 산하기관으로 흡수됐다.

위원회는 그러나 1948년 폐쇄됐다. 이듬해 유엔 사무국은 회원국가가 공식 요구할 경우에만 이를 엄격히 심사, 제한적으로 열람하도록 규정을 고쳤다. 일반인들의 근접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유엔이 보관하고 있는 극비문서 중엔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일본군의 만행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연합군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직접 서명한 보고서도 존재한다. 일본군 고위지휘관들이 집단강간을 부추기고 여성들을 학살하는 등 성범죄 관련 기록물이다.

그러나 유엔이 이들 문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어 자세한 내용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유엔 극비문서의 공개를 앞장서 요구하고 있는 건 주로 유대계 단체들이다. 나치독일의 유대인 집단학살에 관여한 인물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는 경우, 이들을 추적해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유엔 파일을 '판도라의 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범죄들이 베일을 벗고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 간에 논란이 일고 있는 종군위안부 관련 문서들도 이 파일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유엔이 파일을 전면 공개하면 일본은 2차세계대전 때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축사에서 "군대 위안부 문제 만큼은 여러 현안 중에서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인도적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식 제기한 지 두달 여 만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재차 촉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양국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역사의 진실은 그러나 실체적 증거가 전제돼야 한다. 유엔이 보관하고 있는 극비문서들을 샅샅히 뒤져 당시 기록물을 들이대며 보상과 함께 일본 정부차원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관련 자료들
- 일본군 장병의 증언과 수기에 있는 위안부 강제의 실태 (일본어) - 일본군위안부의 강제를 뒷받침할 일본군 자료들.
2013-02-16 : 일본군위안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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