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賞)의 사전적 의미는 ‘훌륭한 일이나 잘한 일을 기리기 위해 주는 표적’이다. 하지만 상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는 그 이상이다.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기쁜 감정적인 차원을 넘어 훌륭한 일을 포상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되게 하고 사회를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상이 이런 사회적 의미를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 권위는 상의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나온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다면 권위는 추락하고 상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잃는다.

노벨 평화상이 가장 권위있는 상중의 하나라는 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1901년 국제적십자의 창설자인 앙리 뒤낭을 첫번째 수상자로, 2002년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까지 100년 동안 그 전통과 권위를 자랑해왔다. 역대 수상자도 ‘국경없는 의사회’ ‘유엔 평화유지군’ ‘국제사면위원회’등 단체와 테레사 수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대통령, 사하로프 박사 등 받을 만한 대상이 받았다.

그런데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이 상이 최근 유독 한국에서 그 권위에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 상을 받기위해 로비를 펼쳤다는 ‘최규선 프로젝트’가 한 주간지에 보도되고 한나라당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노벨상 반납’까지 운운하며 공세를 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때마침 일본의 학사출신 회사원이 올 노벨화학상을 탄 것과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로비의 실행여부를 따지지 않고 문건을 보도한 한 주간지의 보도태도도 문제지만 이를 ‘유효적절하게’ 대선정국에 이용한 한나라당은 가히 노벨상 감이다. 한나라당 몇몇 인사는 김대통령의 수상결정을 앞두고 노르웨이 현지로 날아가 수상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한나라당이 나중에 시비를 자제하긴 했지만 ‘상주고 뺨맞은’ 노벨위원회의 불쾌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 사무총장 겸 노벨연구소장은 최근 한국의 한 인터넷 매체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로비설에 대해 “매우 무례하다(outrageous)”며 불쾌함을 내비쳤다. 상황이 이쯤되면 ‘자국민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게 해달라는 역로비가 많은, 또 받고 나서도 부당한 로비로 받았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상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자존심 상한 노벨위원회측이 앞으로 한국인은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쌓더라도 상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까짓 노벨상 안받으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일로 각인된 한국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칫 한국민이 세계에서 유일한 노벨상 수여 기피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로비가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실제로 김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여러차례 노벨 평화상 추천작업이 이뤄져 왔다. 상도 경우에 따라서는 로비가 필요하다. 업적을 알리고 자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이 아니라면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한나라당이 대선전략 차원에서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시비를 건 일은 전세계에 대한 한국민의 위신추락이라는 부끄러운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최영범 정치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