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지점 80% 폐쇄…은행 지점이 사라진다

자산규모 국내 6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이 지점 80%를 문 닫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지점 없는 은행’ 시대가 현실화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은행 지점을 찾는 대신 인터넷·모바일 등 디지털 경로를 통해 은행 업무를 보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저금리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은행이 비용 감축을 위해 점포와 인력 축소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최근 서울 다동 본점에서 전 행원을 대상으로 ‘직무설명회(Job Fair)’를 열고, 영업점 133개 중 101개 폐점 계획을 밝혔다. 제주도에 딱 한 개 있던 점포도 없애 제주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남은 32개 점포 중 기업금융센터(6곳)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산관리 업무 위주인 WM센터, 여신영업센터등으로 변환되며, 기존 영업점 형태 지점은 서울·수도권을 위주로 26곳만 남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폐점되는 곳에 근무했던 은행원 중 상당수는 ‘고객가치센터’, ‘고객집중센터’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재배치되는데, 사실상 콜센터 업무를 보는 곳으로 알려졌다. 씨티은행은 “고객 거래 중 95% 이상이 비대면(非對面) 채널에서 일어나는 등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발맞추려는 조치”라며 “신설되는 고객센터는 기존 콜센터와는 차원이 다른 비대면 전문 금융컨설팅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씨티그룹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세계 전역에서 지점 축소와 부자고객 위주 영업전략을 펴고 있다. 2009년 씨티는 미국 전역에 1049개 지점을 뒀지만, 지난해 6월 기준 지점 수를 756개로 확 줄였다. 그나마 앞으로는 뉴욕, 시카고, 워싱턴DC, LA,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에만 지점을 남기고 나머지는 차차 없앨 계획이다. 씨티는 런던에서도 지점 네 곳 중 세 곳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히기도 했다.


◇손님 얼굴 보기 어려운 지점들

은행이 지점을 없애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싼 임대료를 치러가며 지점 문을 열어봐야 하루에 손님 몇 명 오지 않는 썰렁한 곳이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조회서비스에서 모바일을 포함한 인터넷 뱅킹 비율은 80.6%를 기록했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창구거래와 자동화기기 등 오프라인 거래는 15.5%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 임직원, 영업점, 자동화기기 수도 모두 줄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 임직원 수는 11만4775명으로 전년 말(11만7023명)보다 2248명 줄었다. 전국 은행 영업점 수는 7103곳으로 전년 말보다 175곳 줄었고, 현금인출기(CD기), 현금자동입출금기(ATM기) 등 자동화기기 수도 같은 기간 2641개가 줄어든 4만8500여개를 기록했다.

최근 K뱅크를 시작으로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등장해 오프라인 은행 지점은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은행지점은 카페·오피스텔로 변신 중

금융 선진국에서는 지점 폐쇄 및 변신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자산기준 14위 은행인 ‘캐피털 원’은 18개 지점을 커피숍 형태로 리모델링했다. 커피숍에 J 크루 청바지와 남색 상의(블레이저)를 차려입은 ‘대사’(앰배서더)를 배치해 이들이 고급 커피를 저가에 직접 서빙하면서 고객들을 응대하는 중이다. 은행은 이 ‘캐피털 원 카페’를 무료 세미나 장소도 빌려주기도 하면서 손님을 끌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도 은행 지점을 줄이는 데 속도를 내는 한편, 노는 은행 지점을 카페로 변신시키거나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형태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서울 동부이촌동 지점을 커피 전문점 브랜드 ‘폴 바셋’과 손잡고 카페형 지점으로 리모델링했다. KEB하나은행은 유휴점포 60여곳을 올해 안에 매각해 뉴스테이로 개발할 계획이다.

앞으로 은행 지점에서 로봇이 아닌 ‘인간 직원’과 대면(對面)하고 금융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산이 일정수준 이상인 부자 고객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자산규모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 들어 덴버와 미니애폴리스 등지에 ‘무인화 지점’을 개설했고 앞으로 미국 전역에 25개의 무인화 지점을 구축할 계획이다. 무인화 지점에서는 단순 업무차 방문하는 고객은 진화한 ATM인 ‘로봇’이 상대하고, 창업자금 대출이나 재무상담 등 복잡한 업무를 보길 원하는 사람은 지점 별실에 마련된 화상테이블에서 콜센터 직원과 연결돼 상담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볼티모어, 라스베이거스, 디트로이트 등 사업성이 떨어지는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은행 지점이 크게 감소하는 경향에 “사방 10마일 거리 내에 은행 지점이 하나도 없는 ’금융 사막’이 생겨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