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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아시아·태평양

퐁니·퐁넛 시민법정 국가배상·특별법 제정으로

등록 :2017-04-07 22:10수정 :2017-04-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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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민변의 ‘베트남 소송’
1968년 2월12일, 해병제2여단 1대대 1중대원들이 퐁니·퐁넛 마을을 다녀간 뒤 발견된 주검들을 미군 병사가 수습하고 있다. 당시 마을에 진입한 미군 상병 본이 촬영한 것이다.
1968년 2월12일, 해병제2여단 1대대 1중대원들이 퐁니·퐁넛 마을을 다녀간 뒤 발견된 주검들을 미군 병사가 수습하고 있다. 당시 마을에 진입한 미군 상병 본이 촬영한 것이다.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치인들에게 “‘위안부’라는 전쟁범죄를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억해야 할 일이 자신이 행한 끔찍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두운 과거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는 ‘유럽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기념비’ 2711개가 세워져 있고, 베를린 시민들은 매일 그 비를 마주한다. 전범국가 독일이 잊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된 지 18년 가까이 되었다. 피해자들의 절절한 외침이 전해졌고 주월미군 감찰부 보고서 등 여러 증거들도 확인됐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당연히 사과도 배상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우리 공동체가 행했던 끔찍한 일을 잊어가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한베평화재단과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룰 시민법정을 준비하고 있다. 가해국의 법률가들이 학살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이다. 고백하자면,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중요한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전쟁범죄 책임을 묻는 시민법정이 가해국의 수도 도쿄에서 열렸고, 이때 일본 법률가들의 노력은 지대했다.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일본 사회가 18년 전 했던 일을, 우리는 이제야 시작하고 있다.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가 원고로 등장
‘피고 대한민국’ 상대 소송 이어갈 것
2018년은 퐁니·퐁넛 학살 50주년
일본이 18년 전 했던 일, 이제야 시작

시민법정은 국가배상소송의 형태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 군인들이 교전 상대가 아닌 베트남 민간인들을 위법하게 살인하거나 다치게 했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마땅히 군인(공무원)이 행한 불법 행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이 시민법정은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가 원고, 대한민국이 피고가 되어 가해국의 수도 서울에서 대한민국의 책임을 묻는 법정이다.

다낭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퐁니·퐁넛 사건 생존자들. 1975년께 찍은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다낭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퐁니·퐁넛 사건 생존자들. 1975년께 찍은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시민법정은 그 이름처럼 시민들이 만드는 가상의 법정이다. 시민법정에서 판결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어떤 사법적 효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짜고 치는 연극’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시민법정은 다르다. 시민법정 이후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는 실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시민법정에서 사용된 소장과 증거들은 그대로 법원에 제출하는 소송 자료가 될 것이다. 국방부가 학살 사실을 지속적으로 부인하는 상황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최초로 구하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 법원이 학살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다면, 한국 정부는 공식적 진상조사를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시민법정 및 국가배상소송은 궁극적으로는 특별법 제정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은 최소 5천명 이상의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이 먼저 ‘베트남전쟁 시기 민간인 희생 사건 등에 관한 진상규명 특별법’을 통과시켜 책임있는 공식 기구를 만들고, 이 기구가 베트남 정부와 협조하여 민간인 학살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을 예상해본다. 이후 양국 정부가 승인한 공동보고서 발간과 한국 국가지도자의 사과, 법적 배상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는 일본과 달라야 할 것 아닌가.

시민법정에서 다룰 학살 중 하나가 퐁니·퐁넛 사건이다. 1968년 2월12일 아침, 한국군 청룡부대(해병제2여단)가 퐁니·퐁넛마을에서 74명을 죽인 사건. 대부분 여성과 아이였다. 지난 18년 동안 한국 시민사회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진행하면서 퐁니·퐁넛 마을 생존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관련된 증거들도 확보해왔다. 퐁니·퐁넛 학살의 생존자를 원고로 하는 소장에는 이러한 18년간의 운동이 담길 수 있을 것이다.

임재성 변호사
임재성 변호사
2018년은 퐁니·퐁넛 학살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 세월 동안, 퐁니·퐁넛 마을 사람들은 한날한시에 집집이 제사를 지내왔다. 50번째 제사의 자리에는 시민법정 판결문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전달해 드리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잊지 않는 방식이라고 그분들에게 고개 숙여 말씀드리고 싶다.

임재성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한베평화재단 이사)

※한베평화재단 후원계좌: KB국민은행 878901-00-009326 한베평화재단(문의 : 02-229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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