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대북 정책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이며 북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대북 선제타격론’이나 ‘김정은 제거설’ 등에 분명한 선을 그으면서,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협상을 위한 기회의 창은 열어놓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9일(현지시각) <에이비시>(ABC) 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해 “우리의 목표는 비핵화된 한반도라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시리아 공격과 관련해 북한이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떤 국가든 국제적 규범이나 합의를 위반하거나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된다면 어떤 지점에선 대응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힌 뒤, 북한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다.
또 틸러슨 장관은 미국이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제거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리비아 정권 교체를 사례로 들며 “리비아의 혼돈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정권 교체의 길을 택했을 때 리비아 상황이 악화된 과거의 교훈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 기조로 다른 국가의 정권 교체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정권 교체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상대방을 협상 상대로 인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이날 <시비에스)(CBS) ‘페이스 더 네이션’ 프로그램에 나와 “시진핑 주석도 (좋지 않은) 상황이 가중돼왔고 따라서 (북한 핵프로그램이) 조처를 취해야 하는 위협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동의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도 당장 평양과 협상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중국과 협력해 북한 지도부의 사고 속에 있는 (계산) 조건들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지점에서 협상은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이 먼저 비핵화 조처를 해야 대화에 임하겠다는 뜻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흡사하다.
트럼프 행정부 안에선 대북 발언 수위와 접근법에 온도차가 감지된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우리의 역내 동맹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옵션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며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보유한 불량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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