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만난 안토넬리는 “디자이너는 의사와 같다.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듯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 인류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오디토리움에서 목진요·송호준·양수인·최우람·양민하·랜덤웍스·스티키몬스터랩·에브리웨어 등 한국의 디자이너 8팀과 디자인에 대한 생각도 나눴다.
-누구나 디자인을 말한다.
“새롭고도,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거다.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향수처럼 오감을 움직이는 것, 혹은 형이상학적인 것도 포함된다.”
-디자인과 예술은 어떻게 다른가.
“예술가는 다른 사람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그래선 안 된다. 의사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니 그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나쁜 디자인은 세상을 망친다.”
-디자인의 영역이 넓고 넓은데….
“미국의 경우, 많은 사람이 예쁘고 비싼 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비싼 의자, 비싼 차, 명품 같은 것 말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디자인 영역에 들어간다고 말해주기 전엔 잘 모른다.”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
“일단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거다.”
안토넬리는 2004년 모마에서 ‘일상의 경의-험블 마스터피스(Humble Masterpiece)’ 전시를 기획해 호응을 얻었다. 하잘것없는 일상용품 100여 점을 디자인이란 관점에서 다시 보게 한 이 전시는 한국(2008년)을 포함해 세계를 돌며 소개됐다.
-좋아하는 디자인이라면.
“(자기 앞의 종이 커피잔을 들어 보이며) 커피잔과 그 홀더, 포스트잇, 젤리빈, 중국의 포춘 쿠키, 아이스크림 콘, 젓가락 등 일상의 수많은 물건. 가령 추파춥스는 생필품은 아니지만, 있으면 즐거운 물건,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다.”
-디자이너의 요건은.
“스폰지나 낙지처럼 여러 군데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중심은 잡아야겠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 필요에 따라 여러 분야 사람을 불러 신선하고도 완전한 협업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네 번째 왔는데, 서울은 모던한 도시임에도 잘 찾아보면 오래된 부분이 있고, 그게 서로 대비된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준용·양민하·양수인·최우람 등 젊은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인 안상수 등에 관심이 크다”고 밝혔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1929년 설립된 뉴욕의 대표적 미술관. 모마(MoMA)라는 약칭으로 더 유명하다. 모네의 ‘수련’, 마티스의 ‘춤’,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 서구 근대 미술의 대표작을 포함, 소장품은 15만 점이 넘는다. 디자인 관련 기획전을 격년으로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