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나온 북한발 ICBM 위협은 예고로 보기에는 능력이 미심쩍고, 공갈로 여기고 무시하기엔 께름칙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 일본 해군은 1월 20일부터 사흘 동안 동해와 일본 근처 해역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미사일 경보훈련(Missile Warning Exercise)이었다. 각각 이지스 구축함을 1척씩 투입됐다. 한국의 세종대왕함, 미국의 커티스 윌버함, 일본의 기리시마함이다.
예전엔 무인기를 띄워 가상 표적을 만들고, 이를 이지스함이 가상 요격하는 훈련도 한 적이 있다. 이번 훈련은 무인기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가상 표적을 만들어 탐지, 요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이 훈련에서 우리 세종대왕함이 미국, 일본과 함께 하지 못한 게 있다. 요격이다.
미국 미사일방어청이 공개한 SM-3 요격 미사일 시험 발사 모습(2014년 5월 20일)
커티스 윌버함과 기리시마함에는 SM-3 요격 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SM-3는 땅과 바다 위 배에서 모두 발사가 가능한 지구상 유일한 요격 미사일이다. 최대 요격 고도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150km을 훨씬 상회한다.
미국과 일본 이지스함에 실전배치된 SM3 블록1A의 요격고도는 500km, 현재 실험 중인 SM3 블록2A의 요격고도는 1,500km이다. 적의 ICBM이 대기권에 진입했다가 다시 낙하할 때 상당히 높은 고도에서 요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세종대왕함에는 SM-3 미사일을 탑재할 수 없다. 이지스함도 전투 체계에 따라 여러 모델이 있는데 세종대왕함은 이 기준에서 '7.1 버전'이고, 탄도미사일 요격 기능을 갖춘 이지스함은 '9 버전'이다. 우리 군은 지난해 '9 버전' 이지스함 3척을 도입하는 계약을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체결했다. 이지스함에 SM-3 요격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군 당국은 SM-3 도입을 결정하지 못했다. 계획도 없다. 해군이 5년 전 국방중기계획에 SM-3 도입을 담으려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지난 6일 오산 공군기지에 사드 발사대가 도착했다.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에 사드 포대를 배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현존하는 최고의 요격 미사일 배치로 맞서는 형국이다. 사드 포대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사드와 관련한 각종 루머도 돌았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해서는 중국의 보복이 진행 중이다.
미군 구축함 USS디케이터호가 중거리 탄도미사일 동시요격 시험을 위해 SM-3 블록 1A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SM-3는 함정 위에 탑재돼 함정이 기항지로 돌아오면 역할을 못한다는 단점 외에도 단거리 미사일 요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탐지거리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부지가 필요 없다는 점은 사드 부지 결정 과정을 겪은 우리나라에게 특별한 장점이다. 동해와 서해에 한 척씩 떠 있으면 수도권 방어를 위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 군은 결정에 앞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수십 가지다. 북한이란 적이 있고, 정치권이 있고, 다른 나라와 심지어 다른 군(육군, 공군 등)의 입장까지 고려하다 보니 결정장애란 비판도 나온다. 이런 군이 어떻게 SM-3 도입 결정도 없이 업그레이드된 이지스함을 도입하겠다는 결정을 했을까? 앞 바퀴는 쓰는데 뒷 바퀴는 쓸지말지 모르지만, 일단 자동차부터 산 것과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