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처럼 본사가 외국에 있는 다국적기업도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국내법을 따라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본사와 서버(정보를 저장·관리하는 컴퓨터)가 국내에 없다는 이유로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내역의 공개를 거부해온 다국적기업들의 행태에 쐐기를 박은 것이라 주목된다. ‘비식별 정보’ 제공 내역까지 공개 대상으로 삼은 점도 눈에 띈다.
1일 정보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인권·시민단체들 말을 들어 보면,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배기열)는 ‘지메일’ 등 구글 서비스를 쓰는 국내 이용자들이 구글과 구글코리아를 상대로 낸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내역 공개’ 청구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구글과 구글코리아는 이용약관과 미국 법이 비공개를 의무화한 것을 뺀 나머지를 공개하라고 했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연합·진보네트워크센터·함께하는시민행동·국제엠네스티(한국지부) 등의 활동가 6명은 구글·구글코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4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구글이 이용자 개인정보를 미국 정보기관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뒤, 자신들과 관련해 수집·보유하는 개인정보 및 서비스 이용 내역의 제3자 제공 현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한 데 따른 것이다.
1심은 구글에 대해서만 제3자 제공 내역을 공개하라고 했으나 이번 항소심은 구글코리아도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인권·시민단체들은 “정보인권 보호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판결이다. 대법원에 상고해 기업 이메일 이용자 개인정보와 서비스 이용 내역 등 1·2심이 비공개 대상으로 판결한 부분도 다시 판단을 받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개인정보와 서비스 이용 내역의 제3자 제공 내역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당사자가 요구하면 응해야 한다. 통신사들이 개인정보(통신자료)를 정보·수사기관에 제공한 내역을 가입자에게 열람시켜주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구글 등은 국내 이용자 개인정보를 수집·보유하면서도 본사가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해왔다. 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인권·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에서 비식별 정보 제공 내역도 공개하라고 한 점에 주목한다. 구글은 비식별 정보는 공개 대상 개인정보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지난 1월 비식별 정보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할 때 개인이 식별된다면 여전히 개인정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비식별 정보란 개인정보이긴 하지만 이름과 주민번호 등이 빠져 그 자체로는 누구 것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개인정보 가운데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지우는 조처를 한 뒤 비식별 정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정보 묶음과 결합하면 개인 식별이 가능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가공해 다른 정보와 결합돼도 개인 식별이 불가능한 익명화와 대비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기업들이 비식별 조처를 해 제3자에게 팔거나 마케팅에 활용하는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다른 정보와 결합되는 즉시 개인 식별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판결로 개인정보를 익명화가 아닌 비식별 조처해 제3자에게 제공·판매하면 위법하다는 게 분명해진 셈”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이에 대해 “판결 내용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