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이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해임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법원의 잇단 제동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근처 집회에 금지 통고를 남발하고 있다. 경찰의 경찰권 남용에 시민단체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부산지법 행정2부(재판장 한영표)는 지난 11일 통일운동단체인 ‘부산겨레하나’가 부산 동부경찰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옥외집회금지 통고 처분 취소 가처분신청에서 “판결 선고 시까지 (금지 통고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고 28일 밝혔다. 부산겨레하나는 지난 10일 삼일절을 맞은 3월1일 일본총영사관 근처에서 집회를 연 뒤 일본총영사관을 한 바퀴 도는 거리행진을 하는 집회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집회금지를 통고했다. 부산겨레하나는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이 집회를 열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12월30일 박근혜 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가 서면 쥬디스태화 쇼핑몰에서 일본총영사관 근처까지 행진을 계획했을 때도 금지 통고했다. 또 지난 4·11·18일 일본총영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려는 무용가들의 공연집회도 불허했다. 경찰은 또 28일 일본총영사관 근처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서 열릴 예정이던 부산 동구의 ‘삼일 만세운동 재현행사’도 불허했고, 동구는 장소를 바꿔 행사를 열었다.
매번 경찰의 집회금지 통고 이유는 같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회 장소가 외교 공관으로부터 100m 안이라는 점, 오물 투척 등 돌출행동으로 외교 기관의 기능 등의 침해 우려가 있다는 점, 일본총영사관의 시설물 보호 요청 사례가 있다는 점 등이다.
법원은 이런 경찰의 판단은 근거 약하다고 본다. 일본총영사관 근처에서 집회가 열리지만, 대규모 집회와 시위로 외교 기관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외교관을 위협한 사례가 없으며 그럴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또 집회 장소가 외교 기관 건물 등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다는 점, 집회가 열리는 날이 휴일이라는 점 등을 들어 경찰의 금지 통고 효력을 정지하고 집회를 허용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경찰이 일본총영사관 근처 집회에 대한 반복적·기계적 법 적용으로 소모적인 갈등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법원이 집회 허가 결정을 내릴 것을 알면서도 경찰이 계속 불허 처분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이 갈등을 조장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외교 마찰 등을 고려해 외교부 등으로부터 책임을 피하려는 경찰의 태도가 알 만하지만,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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