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다음날인 1945년 8월16일 서울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몰려와 출옥하는 독립투사들을 맞이하면서 함께 만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허수열 교수,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1910~2010년 경제지표 분석
1인당 GDP·실질임금 증가한
60년대 이후 들어 급격한 성장
“식민지적 경제구조 없앤 해방
근대적 경제성장 전제조건 돼”
1910~2010년 경제지표 분석
1인당 GDP·실질임금 증가한
60년대 이후 들어 급격한 성장
“식민지적 경제구조 없앤 해방
근대적 경제성장 전제조건 돼”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식민지 시기 일제의 수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성장이 이뤄진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해왔다. 1910~1940년 사이 국내총생산(GDP) 등의 경제지표가 1910년 이전에 견줘 급증한 사실은 이런 주장의 실증적 근거로 활용되어왔다. 여기에 다른 사회부문과 달리 ‘경제부문’은 해방 앞뒤로 연속성이 있었다는 전제조건을 받아들이면, 한국의 근대적 경제성장의 뿌리는 식민지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적 구조가 성립한다.
실증적 연구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해온 허수열 충남대 교수가 이런 논리 구조를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허 교수는 7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연 광복절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말하듯 일제강점기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우며, 한국 경제의 오늘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오히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경제부문의 연속성’을 말하며 외면해온 정치적 변화인 ‘해방’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허 교수는 기존에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대 등으로 분절적으로 다뤄지던 경제지표들의 분석 대상 시기를 1910년부터 2010년에 이르는 100년 동안으로 확대하고, 여기에 경제발전을 분석하는 여러 틀을 적용했다.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그 전후한 시대를 동시에 고찰해, 좀더 통시적인 경제발전의 변화 추이를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경제지표 분석이라는 연구의 성격 자체는 기존과 크게 다를 것 없지만, 한국 근현대사 전체를 그 대상으로 삼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적어도 30~40년 동안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1인당 생산이 함께 증가할 때 ‘근대적 경제성장’이 존재한다는 이론을 내놓은 바 있다. 1910~2010년 사이 남한에서 인구 증가와 1인당 국내총생산이 함께 지속적으로 증가한 때는 60년대 중엽 이후로, 쿠즈네츠의 이론에 따르면 이 시기에 들어서야 근대적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의 개발경제학자 아서 루이스는 농업으로부터 공업으로 노동공급이 충분히 옮겨가, 농업 부문에서 과잉노동이 사라지고 도시의 실질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게 되는 ‘루이스 전환점’을 제시한 바 있다. 1910~2005년 사이 실질임금, 농업인구와 제조업 취업자수, 도시화율 등의 통계를 함께 견줘보면, 남한에서 루이스 전환점은 1960년대 중엽께 나타났다. 1차산업 비중의 감소를 경제발전 척도로 본 클라크의 산업구조, 중공업 비중으로 경제성장을 분석한 호프만의 공업구조, 엥겔계수 등의 지표들 역시 1960년대 앞뒤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60년대 앞뒤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허 교수는 “해방과 함께 ‘식민지적 경제구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식민지적 경제구조란 소수 일본인이 생산수단인 경지, 인적·물적 자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조선인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점차 배제되어 소작농이나 임금노동자로 전환됐고, 민족·학력 차별로 인한 식민지적 고용구조 탓에 임금노동자 가운데에서도 최저변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
해방은 이런 구조를 뒤바꾼 획기적인 일이었다. 해방과 더불어 교육은 양적으로 폭발적으로 팽창했고, 농지개혁은 일제강점기 자본주의적 외형 아래에서 오히려 확대 강화된 전근대적 소작제도를 일소해 농업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런 획기적 변화는 그 뒤 공업혁명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뤄진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으며, “조선이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이루게 된 것이 모든 변화의 전제조건”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무엇보다 허 교수는 “근대로 이행해가는 과정에는 외래적·내재적 요인 등 여러 조건들이 그물처럼 짜여 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전근대 사회에서 축적된 역량이 외래적 요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활용하는 기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만 설명하긴 어렵다는 것. 식민지근대화론의 경우 외래적 요인에만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 식민지적 경제구조를 외면하는 오류를 저질렀다는 지적이다.
결국 경제발전의 요인을 설명하기 위해선 하나의 결정적 요인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경제구조를 더욱 촘촘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그는 “어떤 정권의 ‘리더십’ 등으로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정권에 따라 올림픽 금메달이 좌우된다고 보는 거나 마찬가지의 궤변”이라며 “밑바닥에 깔린 힘들이 위로 올라가면서 무엇을 이뤄냈는지를 봐야 한다”고 짚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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