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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3 03:03
전통 공예계의 대부 이칠용, 정책·기록의 오류 고발한 책 내
전통 공예계의 대부, 공예인 민원실장, 장인(匠人)들의 해결사….
이칠용(71·사진)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에겐 이런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가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글과 신문 기고문 등을 정리해 '이칠용의 공예일기'라는 책을 펴냈다. 이 회장은 "공예계 문제와 정부 정책을 아무리 지적해도 문제가 고쳐지지 않으니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책은 전통공예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고발과 쓴소리가 대부분이다. "장인들의 작업 현장에 실사 나온 일부 교수나 문화재위원의 막말이 심각해요. '검정고시 출신이군' '시집도 갔네?' 하는 식이죠. 이런 비하 발언이야말로 갑질 횡포 아닙니까?"
정부기관에서 발행하는 서적과 기록의 오류도 지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우리 장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나전 기술을 가르쳤는데 거꾸로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왔다고 잘못 서술한 부분이 특히 문제"라고 했다. 책 서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본의 '후지야마 대백과사전'에는 '한국 나전칠기 장인 전성규는 송주안, 김봉룡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나전 기술을 가르쳤다. 조선의 일류 기술자들을 모셔왔기 때문에 오늘날 다카오카시(市) 나전칠기에는 한국 나전칠기의 영향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낸 '한국 근현대 나전 도안'에는 '송주안은 일본 다카오카에 연구생으로 가서 8년간 기술을 익히고 귀국했다'고 정반대로 기록하고 있다."
1970년 나전칠기에 입문한 그는 '한미공예사'를 차려 1970~80년대 나전칠기 제품을 일본으로 수출해 큰돈을 벌었다. 1996년 부도로 그만둔 후 공예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전통 공예는 공방에서 작업하는 장인에게서 전승·전수되는데 장인을 푸대접하는 풍토가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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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용(71·사진)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에겐 이런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가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글과 신문 기고문 등을 정리해 '이칠용의 공예일기'라는 책을 펴냈다. 이 회장은 "공예계 문제와 정부 정책을 아무리 지적해도 문제가 고쳐지지 않으니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책은 전통공예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고발과 쓴소리가 대부분이다. "장인들의 작업 현장에 실사 나온 일부 교수나 문화재위원의 막말이 심각해요. '검정고시 출신이군' '시집도 갔네?' 하는 식이죠. 이런 비하 발언이야말로 갑질 횡포 아닙니까?"
정부기관에서 발행하는 서적과 기록의 오류도 지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우리 장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나전 기술을 가르쳤는데 거꾸로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왔다고 잘못 서술한 부분이 특히 문제"라고 했다. 책 서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본의 '후지야마 대백과사전'에는 '한국 나전칠기 장인 전성규는 송주안, 김봉룡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나전 기술을 가르쳤다. 조선의 일류 기술자들을 모셔왔기 때문에 오늘날 다카오카시(市) 나전칠기에는 한국 나전칠기의 영향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낸 '한국 근현대 나전 도안'에는 '송주안은 일본 다카오카에 연구생으로 가서 8년간 기술을 익히고 귀국했다'고 정반대로 기록하고 있다."
1970년 나전칠기에 입문한 그는 '한미공예사'를 차려 1970~80년대 나전칠기 제품을 일본으로 수출해 큰돈을 벌었다. 1996년 부도로 그만둔 후 공예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전통 공예는 공방에서 작업하는 장인에게서 전승·전수되는데 장인을 푸대접하는 풍토가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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