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인문학] 의정부 놀부도 반한 부대찌개
의정부는 가장 널리 알려진 부대찌개의 발원지다. 1950년대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나온 통조림 햄이나 소시지를 볶아낸 음식이 찌개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부대찌개의 전신으로 꿀꿀이죽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꿀꿀이죽은 미군부대에서 버린 음식물 쓰레기로 끓인 죽을 말한다. 그 이름에 ‘꿀꿀이’가 붙은 이유는 본래 이 쓰레기가 돼지 사료용이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남한 도시 주변에 자리를 잡은 미군부대에서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돼지사육장으로 가지 않고 부대 근처의 사람들에게 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은 미군부대 주방에서 보조 일을 하는 한국인들이었다. 그들에게 미군부대의 음식물 쓰레기는 돈이 되었고, 사 먹는 사람에게는 끼니가 되었다.
꿀꿀이죽=유엔탕=존슨탕
서울 한강변의 이촌동 일대, 지금은 최고급 아파트가 자리 잡은 곳이지만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부터 꿀꿀이죽이 대단한 인기를 누린 곳이다. 이북 피난민은 물론 경상도와 전라도의 농촌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고 먹을거리는 척박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다행히 근처에 미군부대가 있어 꿀꿀이죽을 사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꿀꿀이죽이라 부르지 않고 ‘유엔탕’이라 불렀다.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꿀꿀이죽은 전국 각지의 미군부대 주둔지 근처에서 인기였다. 배를 채울 것이 없었던 시절, 미군들이 먹다 버린 통조림 햄은 매우 유용한 끼니였다. 값도 싸서 가득 담은 꿀꿀이죽 한 뚝배기가 1960년대 10환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단돈 500원이다. 1961년 2월 19일자 <경향신문>에는 당시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인 브라이언 윌슨이 쓴 칼럼이 나온다. 칼럼의 제목은 ‘우리 모두 죄짓고 있다’. 그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미군부대의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꿀꿀이죽을 가난한 사람들이 사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분개했다. 1966년 5월 린든 존슨(Lyndon Baines Johnson) 미국 대통령이 서울에 왔다. 정부가 미국 대통령 방한을 하도 선전한 탓에 사람들은 꿀꿀이죽을 유엔탕이란 이름 대신 존슨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존슨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통조림 햄, 부대찌개 일등 공신!
그렇다면 정말 부대찌개는 꿀꿀이죽 혹은 유엔탕 혹은 존슨탕이 진화한 것일까? 부대찌개의 재료를 확인해보자. 부대찌개를 부대찌개답게 만드는 재료는 통조림 햄과 소시지 그리고 통조림 콩이다. 여기에 배추김치와 고추장이 들어가면 기본적인 부대찌개다. 온갖 음식물 쓰레기에 밥을 조금 넣고 끓인 꿀꿀이죽과 부대찌개는 결코 같은 음식이 아니다. 찌개는 죽이나 탕과는 엄연히 다르다. 본래 탕이나 국은 국물이 많고 건더기가 적은 음식이다. 이에 비해 찌개는 양념도 많고 건더기도 많다. 또 바특하게 끓여야 찌개가 된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던 찌개는 된장찌개였다. 1930년대 배추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김치찌개도 생겼다. 김치찌개는 날이 갈수록 인기를 얻어 1950년대 후반 가장 서민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돼지고기를 많이 넣으면 역한 냄새가 나곤 했는데, 미군부대 근처에서 돼지고기 대신 통조림 햄을 넣어 만든 김치찌개에서는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에게도 김치찌개는 전투에 나가기 전 힘을 주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배추김치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1966년 9월 지금의 가톨릭대학 의대팀이 김치 통조림을 개발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에게 제공했다. 배추김치를 통조림에 넣고 63도에서 30분간 가열한 후 코발트60이라는 방사선을 쪼이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만든 김치 통조림은 2개월이 지나도 변질되지 않았지만 맛은 김치찌개의 김치였다.
이 무렵 베트남에서는 미군의 전투 식량인 씨레이션(C-ration)에 담긴 통조림 햄과 김치통조림의 배추김치가 만나 부대찌개와 비슷한 음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의정부에서 이름난 부대찌개가 이런 과정을 통해 나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1963년 한국에 인스턴트 라면이 등장하면서 부대찌개는 화려한 변신을 맞이했다. 1970년대 이후 인스턴트 라면은 부대찌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되었다. 햄은 여전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햄이 부대찌개의 주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초반, 부대찌개는 미군부대 근처를 벗어나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돼지 살코기로만 만든 통조림 햄과 소시지를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부대찌개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글 / 주영하 교수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문학자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전공 교수다. 《음식전쟁 문화전쟁》 《차폰 잔폰 짬뽕》 《식탁 위의 한국사》 등의 저서가 있다.
* 윗 글은 《사보 SK》 2014년 6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SK그룹 홈페이지 《사보 SK》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맛있는 Tip. 의정부 부대찌개 vs. 송탄 부대찌개
미육군이 주둔하던 의정부와 미공군이 주둔하는 송탄은 부대찌개로 유명한 지역. 서울 용산의 존슨탕도 유명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부대찌개하면 의정부와 송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두 지역의 부대찌개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레시피가 많이 섞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맥락을 찾아보니 의정부 부대찌개와 송탄 부대찌개엔 분명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알고 먹으면 훨씬 맛있겠죠?
의정부 부대찌개(왼쪽)과 송탄 부대찌개(오른쪽)
맑은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의정부 스타일 부대찌개
정확히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의정부 부대찌개는 맑은 육수를 사용합니다. 소시지와 햄, 간 고기, 김치 등의 양념은 비슷합니다. 다만, 맑은 육수를 사용하다보니 좀 더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걸쭉한 맛을 즐기는 송탄 스타일 부대찌개
송탄 부대찌개는 소시지와 햄 그리고 김치는 물론 스테이크용 소고기까지 듬뿍 넣어 끓입니다. 의정부와는 달리 걸쭉한 육수를 사용하는데요. 돼지 육수를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은 까닭에 맛이 깊은데요. 치즈와 토마토 소스에 설탕을 넣고 달큰하게 조린 베이크드 빈스라는 콩 통조림이 빠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