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3일 방한중인 트란 둑 루옹 베트남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사과발언을 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뜻을 거듭 표시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지난번(98년12월) 베트남 방문때 호치민 묘역도 그런 심정에서 참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98년 12월 베트남방문 당시 “과거 한때 불행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던 것보다 한층 진전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98년때의 사과가 일반적 수준에 머문 사과였다면 이날 발언은 구체적으로 베트남전쟁을 지칭했으며, 이 전쟁에 한국인이 참여해 베트남인에게 고통을 줬다고 지적, 가해주체도 명시한 게 특징이다.

김 대통령은 이어 ‘비가 온 후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을 인용한 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가자는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과거의 불행이 있었기에 한국은 베트남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이해와 협력을 해나갈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루옹 주석은 “한국의 참전으로 베트남인들의 고통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으나 양국은 미래지향적으로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언급, 한국·베트남미래지향적인 관계 형성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이날 회담은 당초 오전 10시15분부터 11시15분까지로 예정돼 있었으나 두 정상이 진지하게 많은 대화를 나누는 바람에 낮 12시15분까지 1시간 가량 더 계속됐다. 김대통령과 루옹주석은 이어 이날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만찬에서도 양국관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건배를 제의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만찬에는 베트남에 일고있는 ‘한류’열풍을 감안한 듯 장동건, 김남주씨 등 인기연예인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태희기자 lth@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