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발간된 것은 하나의 신호다. 외래의 권위에 대한 맹종의 말이 아니다. 한국의 음식 문화가 산업의 차원에서 매력적으로 고려될 정도로 발달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식 문화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의 식당 풍경에는 여전히 수난이 이어진다. 식당도 서비스 직원도, 손님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직장인 A씨는 노래방에 다녀온 것처럼 목이 쉬었다. 광활한 식당에는 손님이 가득했지만 감당할 만한 직원은 없었다.
쫓기듯이 뛰어다니며 음식을 나르는 직원들은 불러도 듣지를 못했다. 저 멀리서 빠르게 지나치는 직원을 볼 때마다 물 한 잔 얻어 마시겠다고, 맥주 한 잔 더 마시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팔을 흔들다 보니 진이 다 빠져서 음식이 코로 들어갈 지경이었다. 주인은 그런 꼴을 봤는지 못 봤는지 지인들이 몰려온 룸에 서비스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팔렸다.‘순실 매너’ 즐비한 손님과 식당
B씨는 식사를 마치지 않고 식당을 박차고 나올 뻔했다. 옆 테이블에 음식을 통째로 엎은 어린 아이가 있어서 부모가 수습하느라 어수선해졌던 탓은 아니었다. 그 아수라장을 방치해 두고 저들끼리 하던 대로 음식이나 나르며 노닥거리는 직원들이 기가 막혔던 탓이다. C씨도 한 레스토랑에 갔다가 눈 앞의 풍경에 입맛이 떨어져 식사를 마치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훤히 다 보이고 들리는 오픈 키친에서는 욕의 사육제가 열리고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요리사는 어리바리한 직원에게 험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요리사도, 직원도 바 좌석에 앉은 C씨 앞에 와서는 방긋방긋 웃었지만 C씨의 금요일 밤은 괴팍한 교육열에 이미 파괴됐다. D씨가 갔던 식당에서도 사장님은 욕을 잘했다. 손님들 앞에서 망신 당해보라는 듯 직원에게 큰 소리로 욕을 날리며 꾸짖었다. 불편한 마음에는 직원도 한 술 더 떠 일조했다. 음식을 가져다 주며 사장 욕을 중얼거렸다. 혼잣말 치고는 너무 잘 들렸던 걸 보면 직원의 살해충동 고백이 사장은 못 들어야 하고 손님은 들어줘야 하는 호소였던 모양이다. E씨 역시 한 식당에서 욕을 듣고 기분을 잡쳤다.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집’이다. 사장님은 손님에게 욕하는 캐릭터로 수십 년을 장사했다. 1990년대까지 유효했던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는 기실 대단히 눈치 좋은 프로페셔널 서비스 인력이다. 욕을 듣고도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밀당은 아무나 못한다. 다른 욕쟁이 콘셉트 식당에 갔던 F씨는 귀신 같이 기분 나쁘지 않은 선을 딱 지키는 욕지거리엔 허허실실 웃었지만 결국 다른 데서 기분을 망쳤다. 숟가락은 덜 씻겨 있었고 유리잔엔 고춧가루가 묻어 나왔다. 정겹거나 웃기지 않아도 좋으니 깨끗한 식기로 식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테이블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선 쉰내가 났다.오픈키친의 화난 요리사는 식욕을 떨어뜨린다. 미쉐린 스타도 그 앞에선 무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러려고 식당에 온 게 아닌데
한국의 식당에서는 수난이 익숙하다. 외식문화는 창달해 가는데 서비스 문화는 그에 발맞춘 성장이 늦되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가장 잘해서 다른 호텔에서도 교육을 위탁할 정도라는 신라호텔의 조정욱 총지배인에 따르면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갖추는 진심 어린 배려의 자세”가 좋은 서비스의 정의다. ‘당연히 호텔이니까’라는 냉소는 부디 거두자.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6,000원짜리 백반집 사장님이나 4,000원짜리 국숫집 서비스 직원으로부터도 이런 서비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대체로 우리가 겪은 식당 수난사에서는 ‘잊지 못할 불쾌한 경험’과 ‘방만하고 무례한 서비스’가 더 많다. A씨와 B, C, D, E, F씨는 쾌적한 식사를 위해 아무 것도 배려 받지 못했다. 되레 침해 당하기까지 했다. 대충 상냥하게 웃어 주면서 음식이나 나르면 그것이 서비스라 여긴다. 사장이나 직원이나 매한가지다. 더러 사장이 서비스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어도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최저시급을 조금 넘기는 돈을 받고 홀에 서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겐 사장님의 서비스 철학이 성가시다. 그런 것이 없을수록 ‘꿀알바’가 된다. 아르바이트생 대신에 성가셔도 견딜 풀타임 직원을 뽑자고 해도 인력이 없다. 사회 어느 구석을 봐도 서비스직은 선호 직업 축에 못 든다. 좋은 직업이 아니라 여기기 때문에 평생을 바라보고 머무는 인력이 점점 귀해진다. 여러 개 식당을 운영 중인 모 사장의 경험치로 가늠해보자면 “잠시 스쳐가는 직업으로 여기고 지나쳐가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다. 그는 경제 성장에 비해 더뎠던 음식 문화에도 탓을 돌린다. “좋은 서비스를 하려면 그런 서비스를 받았던 경험도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예약이 공짜인 한국의 외식문화는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주원인이다. 누구를 위하여 이 요리를 만들었던가. 게티이미지뱅크
노쇼 보려고 예약 받았나 자괴감
반면 식당 입장에서도 손님 때문에 수난이다. 특히 요즘 같은 연말이 그렇다. 송년회와 크리스마스라는 호재가 붙어 다니는 12월은 ‘대목’이다. 한 해 동안 적립한 평판에 비례해 예약이 줄을 잇는다. 평소 고전하던 식당이라도 대목의 혜택은 공평해서 예약이 들어온다. ‘노쇼(No Show)’라 부르는 예약 부도는 고질적인 문제다. 몇 해째 요리사들이 나서고 각종 매체도 입을 보태 의식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예약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타나지 않고 식당에서 걸려온 전화는 피하는 행태는 식당 입장에서 여전히 가장 고통스러운 유형이다. 뒤늦게 나타나도 문제고, 전화를 받아도 문제다. 테이블을 비워둔 시간만큼 식당에서는 기회비용에 손해를 본다. 단체 예약도 골치가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제 시간에 나타나는 사람이 절반이 되지 않고 예약한 인원이 다 모이기까지는 적어도 30분, 1시간이 지나야 한다. 기회비용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야 매한가지다.가성비가 음식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됐지만, 그 가격 안에 서비스는 포함돼 있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