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 윤명숙 박사
윤명숙 박사
일본쪽 10월 제막식 전날부터 공세
“일본기업 많은데 교류협력 악영향”
최근 중국 당국도 “실내 이전” 요구 “성금 모아준 한국 시민사회도 지분”
쑤즈량 교수 등 ‘지킴이들’ 지원 기대 일본 쪽의 노골적인 철거 압력은 소녀상 제막식 전날부터 시작됐다고 윤 박사는 전했다. “10월21일 오후 4시께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서 쑤즈량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치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상하이에는 일본 기업도 많은데 양국 교류협력에도 좋지 않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쑤 교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단다. 쑤 교수는 1993년께부터 위안부 문제를 조사하고 연구 서적도 내왔다. “그는 중국인 위안부(중국 거주 조선인 출신 위안부 포함) 구술조사도 꽤 많이 하고 민간인들의 기부금을 모아 매월 피해자로 확인된 분들께 생활비 지원도 하고 있다”고 윤 박사는 전했다. 현지와 일본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10월22일 오전 소녀상 제막식이 열리자, 그날 오후 일본 외무성이 도쿄 주재 중국대사관에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으며, 중국의 일본총영사관에서도 상하이사범대학에 소녀상 철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그 뒤부터 중국 정부 쪽의 압력이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왔다. “22일 오후부터 중국 외교부는 상하이시 인민정부 외사 사무실에 연락을 했고, 상하이시 인민정부는 다시 상하이시 교육위원회에, 그리고 상하이시 교육위원회는 상하이사범대로 연락을 했다. 처음에는 소녀상에 천막을 씌워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했다. 그러나 곧 요구 내용이 소녀상 철거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1월10일께부터는 다시 소녀상을 박물관 내부로 옮기라는 요구로 바뀌었다.” 이에 반발한 중국인들의 요구로, 중국 외교부는 브리핑을 통해 몇차례 강경한 태도로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대외 반응과 내부 대응이 다른, 이중적이다.”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는 소녀상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압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 상하이사범대가 소녀상 설치를 허가해줬지만, 당국의 압력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역사적 범죄사건인데, 지금 다시 국가가 민간의 소녀상 설치사업에 관여해 철거 내지 이전을 강제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원래 소녀상 건립을 마냥 반긴 사람은 아니다. “소녀상은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10대 소녀로만 한정하여 이미지를 굳히기 때문에 무조건 찬성하진 않았다. 소녀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게 가부장적 순결 이데올로기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 피해자가 소녀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가 역사를 기억하는 조형물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그는 특히 한-일 간의 12·28 합의로 한국에선 타격이 컸지만, 이제 막 그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한 중국은 다르다며, “중국에선 지금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녀상 건립이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부각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논의의 확대재생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계속해주기를 바란다.” 지난해 9월부터 4개월간 상하이에 머물렀던 윤씨는 올해 들어 9월부터 내년 8월말까지 1년간 예정으로 쑤 교수의 연구센터에 머물면서 저장성의 일본군 위안부 현지조사에 동참하는 등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32년 일본 해군 육전대가 주둔한 상하이는 일본군 위안소가 가장 먼저 설치된 곳으로, 지금도 일본 해군 위안소 건물이 남아 있어 박물관으로 재건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방문 중에 그는 만화작가 김금숙씨와 함께 중국에 남은 유일한 한국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로 낙상사고를 당해 한국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하성숙(88) 할머니를 찾아 위문하고 간병 중인 막내딸에게 중국 학생들이 작성한 응원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