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가보니 철판에 아연을 도금한 함석을 구부려 만든 기와였다. 이른바 ‘함석 기와 지붕’이다. 지붕 끝 기와 아래 벽면도 흙 대신 함석에 노란색을 칠해 만들었다. 심지어 처마 아래 서까래도 함석을 둥글게 말아 나무 모양으로 만든 뒤 밤색을 칠했다. 가짜 기와 지붕인 셈이다. 도시의 한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함석 기와 지붕이 천년고도 경주 한옥마을에 등장한 것이다.
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에 있는 함석 기와 지붕. 함석을 구부려 기와 모양을 냈다. [사진 김윤호 기자]
진병길 문화재청 문화재돌봄지원센터 이사장은 “함석 기와가 한옥마을에 등장하면서 천년고도의 아름다움에 흠집이 생기고 있다”고 걱정했다.
8일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9월 12일 지진으로 황남·월성·황오동의 한옥 3500여 채 중 1052채가 피해를 봤다. 대부분 기와 파손이었다. 지진 발생 두 달 가까운 현재 60%인 630여 채가 복구됐다.
정부는 특별재난지구 경주에 47억원을 지원했다. 지원금은 차등화돼 있다. 전파(全破)는 900만원, 반파(半破)는 450만원, 소파(小破)는 100만원이다. 기와 파손은 대부분 소파에 해당됐다. 소파는 본래 규정에도 없지만 위로금 성격으로 지원됐다. 그래서 값싼 함석 기와가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역사문화미관지구나 고도제한 지역의 한옥은 함석 기와를 이면 도시계획 조례에 따라 불법 건축물이 된다. 경주시는 이를 알고도 처벌할 수 없는 처지다. 경주시 김종순 건축1계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뻔히 알면서 행정기관이라고 어떻게 제재할 수 있겠느냐”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경주에서 전통 기와를 만들고 지붕 시공을 하는 경주 노당기와 정문길(74) 회장은 “한옥마을에 전통 기와를 시공하라는 규정은 있지만 경주시가 수리를 지원할 여력이 없으니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그러면서 전통 기와의 장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통 기와는 흙으로 빚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함석 기와는 여름에 뜨겁고 비가 오면 다닥다닥 소리도 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 전통 기와의 용마루가 지진이 다시 나도 흔들리지 않도록 구리 철사로 힘들게 묶었다”며 “정부가 사정이 어렵겠지만 천년고도에 투자한다는 각오로 전통 기와를 지켜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송의호·김윤호 기자 yee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