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JTBC 등 보도 경쟁에도
지상파 3사 등 권력 눈치보기
기자들 “전담팀 구성 간부가 막아
받아쓰기 하는 심정 갈가리 찢겨”
KBS노조는 보도본부장 사퇴 촉구
지상파 3사 등 권력 눈치보기
기자들 “전담팀 구성 간부가 막아
받아쓰기 하는 심정 갈가리 찢겨”
KBS노조는 보도본부장 사퇴 촉구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지면서, 그동안 ‘기레기’란 오명에 시달리던 한국의 저널리즘이 오랜만에 여론의 응원을 받고 있다. 보도 경쟁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한 언론사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사의 보도 행태에 대해 강한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를 내놨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권력 비판’이라는 저널리즘 제1의 목적에 충실했는지 살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는 여러 언론이 보도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금씩 실체를 드러냈다. 지난 7월 종합편성채널(종편) <티브이(TV)조선>이 미르재단·케이(K)스포츠재단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사건 등으로 <티브이조선>이 침묵하게 된 상황에서 <한겨레>가 두 달 동안 관련 사안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최순실씨의 존재를 끄집어내며 핵심에 다가갔다. 이로 인해 촉발된 취재 경쟁에서 정점을 찍은 것은 최순실씨의 컴퓨터 파일을 입수해 ‘국정 개입’의 구체적 정황을 확인한 종편 <제이티비시>(JTBC)였다. 시민들은 드러난 권력의 실체에 아연해하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언론의 ‘권력 비판’ 보도 경쟁을 반겼다.
그러나 이런 취재 경쟁에서 소외된 언론사에서는 자조와 절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25~26일 <한국방송>(KBS), <에스비에스>(SBS), <와이티엔>(YTN), <국민일보>의 전국언론노동조합 본부 또는 지부에서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자사 보도를 성토하는 성명들이 쏟아져나왔다. <문화방송>(MBC), <서울신문> 등에서도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자사 보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일부에선 내부 쇄신을 위해 조합원 총회 또는 결의대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까지 나섰다. 대부분 회사에서는 26일을 앞뒤로 전담 취재팀을 꾸리기로 결정하는 등 내부 비판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구성원들은 그 의지와 역량에 의문을 던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언론사 노조들은 “이미 9월께부터 구성원들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특별취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으나 묵살됐다”는 점을 한결같이 지적했다. 곧 ‘권력의 눈치를 보는 간부들이 현장의 적극적인 취재 의지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한국방송에서는 전담 취재팀 구성 등의 제안에 대해 보도본부 간부들이 “특정 정치 세력의 정략적 공세”라며 일축했다고 한다. 에스비에스 역시 진작에 특별취재팀 구성 요구가 있었으나 묵살됐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은 와이티엔, 국민일보도 마찬가지다.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케이비에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노조는 “전방위적으로 달라붙어 취재했어야 할 권력형 게이트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방송 장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좌절감이 두드러진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종편 보도를 ‘받아쓰기’해야 하는 기자들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진다. 보도본부는 지금 폭발 일보직전”이라고 전했다. 새노조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기자협회도 27일 열린 총회에 ‘사퇴 촉구’ 결의안을 안건으로 올렸다. 문화방송의 한 기자는 “얼마 전까지 ‘최순실 감추기’에 급급했던 간부들이 이제는 특별취재팀을 지휘한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의지도 역량도 실종된 보도본부의 현실에 기자들이 참담함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모든 분야의 엘리트 무리들이 감추기만 하던 권력의 실체가 언론의 보도 경쟁을 통해 밝혀졌다. ‘최순실 게이트’는 한국 언론의 시금석이라 할 만하다. 2016년은 ‘한국 언론의 해’”라고 말했다. 모처럼 한국 언론이 ‘권력 비판’이라는 본질적 목적과 ‘보도 경쟁’이라는 실존적 조건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보도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일부 언론의 모습에 대해, 이 교수는 “그것 역시 언론의 자유이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어떤 언론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기록에 남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를 비판하고 자성하는 기자들의 목소리는 아직 ‘기자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평가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최순실 게이트’는 <티브이조선>, <한겨레>, <제이티비시> 등 여러 언론이 보도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금씩 전모를 드러냈다. 지난 7월 미르재단에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제기한 티브이조선 보도. 티브이조선 화면 갈무리
지난 9월20일 미르재단·케이스포츠재단에 최순실씨가 개입한 정황을 밝혀낸 한겨레 보도. 한겨레 갈무리
지난 24일 최순실씨의 대통령 연설문 개입 정황을 밝혀낸 제이티비시 보도.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27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가 자사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비판하며 “청와대방송 즉각 중단하라”는 팻말을 건물에 붙였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