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18 14:13 | 수정 : 2016.10.18 17:52
지난 17일 1500억원 규모의 대한항공(003490)회사채 매각이 전량 불발되는 상황을 맞으면서 유동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만기가 1년에다 연 4%에 달하는 금리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들이 단 한 곳도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저(低)유가는 항공사에 큰 호재다. 매출원가의 40%에 육박하는 유류비 부담이 줄어들면 그만큼 수익이 늘기 때문이다. 올해 유가가 30달러대까지 하락하며 유류비 부담은 20% 정도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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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항공 서소문 본사 사옥/조선DB
한 증권사 채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이) 연말까지 부채비율 1000%를 못 맞추면 1조30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의 크로스 디폴트가 발생한다"며 “과거에도 넘어갔으니 이번에도 넘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기관들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한항공이 차입금을 본연의 사업인 항공기를 늘리는 데 쓴 것이 아니라 호텔, 레저 등 다른 사업에 썼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유가에도 곳간을 채우지 못하는 등 리스크가 부각됐다는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연말까지 부채비율을 1000% 밑으로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 자본확충 뿐만 아니라 채무조정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 증권사 크레딧 팀장은 “솔직히 재무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룹 전체 또는 다른 리스크가 있다고 본다”며 “환투기를 하고 호텔 짓고 레저사업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꼬집었다.
◆ 1년 만기 연 4% 불구 회사채 1500억원 전량 매각 불발...15조 차입금 부담
대한항공은 지난 17일 1년 만기 150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위해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대한항공 회사채의 신용등급은 BBB+(부정적)로 주관사들은 최근 회사채 발행금리와 채권시장 동향 등을 고려해 희망 금리를 3.80~4.00%로 제시했다.
대한항공의 차입금은 지난 6월말 기준 15조5000억원으로 글로벌 항공사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일본항공(2조원), 에바항공(2조8000억원), 콴타스항공(6조원), 싱가포르항공(7조8000억원), 가루다항공(10조2000억원)보다 차입금이 많고, 국내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6조8000억원)보다는 2배 이상 많다.
특히 단기차입금 비중이 매우 높다.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은 5조6100억원 수준이다. 반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57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한 채권 전문가는 “글로벌 항공사들은 지난해까지 재무구조가 매우 좋아졌는데,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 / 이자비용)이 20~30배 가량이고 차입금도 30% 가량 줄었다”며 “하지만 대한항공은 부채비율과 차입금이 계속 늘었는데,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이자보상비율이 1배가 안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재무상황은 안 좋은데 대규모 투자는 지속되고 있다. 2018년까지 약 53여대의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인 데다가 한진인터내셔널, 왕산 레저개발 등을 통해 호텔 레저 사업에서도 상당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총 13억5000만달러 규모의 미국 소재 월셔그랜드 호텔 재건축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중 절반 가량만 투자가 완료돼 추가적으로 6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여기다 한진해운(117930)등 계열사 지급보증 문제도 얽혀있다. 한진해운 부실로 1분기에만 3914억원의 손실을 반영했지만 약 2000억원이 넘는 추가 손실 위험이 남아있다. 또 한진, 한진중공업홀딩스 등에 약 141억원의 지급보증을 선 상태다. 이들 회사의 영업활동이나 재무상태가 나빠지면 대한항공의 재무구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1215억원 규모의 총수익스와프(TRS) 차액정산 등은 최근 모두 완료했다고 대한항공 측은 설명했다.
또 다른 증권사 채권 연구원은 “항공산업은 기복이 굉장히 심한 업종”이라며 “환율, 유가, 테러, 전염병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인이 너무 많은데, 그나마 올해 영업환경이 굉장히 좋았지만 대한항공은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증권업계에서는 기관들이 투자하기엔 신용등급이나 재무안정성 등 측면에서 무리가 있어 이미 예견하고 있던 결과로 이번 회사채 발행은 리테일용 수요(개인투자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올해 연간 1조2000억원 정도 영업이익이 날 것이라는 게 시장 전망이고 한진해운 등 계열사 지원 문제는 3분기까지 거의 매듭 지어진 상황”이라며 “항공업계 시장 지배력이나 장거리 노선에서의 압도적 경쟁력 등을 감안하면 영업적 측면에서는 견고하다”고 덧붙였다.
◆ 연말까지 부채비율 1000% 밑으로 낮춰야...1조원 이상 회사채 크로스디폴트 우려
대한항공이 회사채 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앞으로 조달비용은 더 올라갈 수 있고, 이는 결국 재무부담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매출채권 유동화 등을 통해 단기적으로 버틸 수는 있겠지만 지속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한 증권사 크레딧 연구원은 “대한항공은 지속적인 차환(돈을 빌려 기존의 만기 부채를 갚는 것)에 기대지 않고선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회사가 정상적으로 영업이익을 통해 차입금을 갚는 선순환 구조로 가기에는 이미 차입금에 대한 부담이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한 채권 펀드매니저는 “대한항공은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데다 앞으로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 기존 영구채 등 대여금 상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회사채 매각이 어렵다”며 “굳이 펀드매니저 입장에서 대한항공을 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 대한항공 측은 연말까지 부채비율을 900%대로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3분기 실적 호조에 따른 이익이 자본에 더해지면 영구채 발행을 하지 않더라도 부채비율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회사측은 강조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영업이익이 계속 나고 있고 한진해운 등 계열사 지원 문제는 3분기까지 회계에 대부분 반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사들은 계열사 지원 부담이 확대되고 부채비율이 줄지 않으면 추가적으로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신용등급이 3단계만 더 떨어지면 투기등급으로 전락한다. 투기등급은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렵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봉균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대한항공은 재무부담 완화 없이는 손익구조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장성 차입금 차환 여부, 유동성 대응 여부, 한진해운 부실 여파로 부담해야 할 손실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대한항공 회사채 미매각 물량은 한국투자증권 등 주관사들이 떠안게 된다. 이번 미매각 사태로 이달 말 대한항공이 재추진하기로 한 3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한항공은 이달 말께 한진해운 지원 이슈가 해소될 것으로 보고 외국 기관 투자가들과 금리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