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한일재무장관회담 서울서 개최
과거사 문제로 종료된 지 1년 6개월만의 재개 요청
한중관계 재조정, 美 연준 옐런의 금리인상 가능성 영향 준 듯
|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아소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 회담 시작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한국이 27일 열린 한·일 재무장관회담에서 일본에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과거사·영토문제로 양국의 경제협력까지 냉각되면서 지난해 2월 통화스와프 협정을 종료시킨 지 1년 6개월만의 재개 요청이다. 한·일 양국은 향후 협정 체결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하기로 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배치 결정 이후 한·중간 냉각기를 지렛대 삼아 양국이 관계 개선에 나서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아소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 제7차 한·일 재무장관회담을 마친 후 "양국 간 경제협력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 아소 부총리에게 통화스와프 논의 개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이어 "양국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회담을 종료하면서 "이번 회의는 양국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새롭게 제시했다"고 말했다. 양국 경제수장은 회담 시작부터 시종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 부총리는 회담 시작 직후 모두발언에서 "한·일 양국관계에 대해 언론뿐 아니라 국민 모두 상당히 관심 가지고 있으며 특히 최근 국제경제상황 감안할때 양국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양국간 관계 개선에 도움 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고 운을 띄웠다. 아소 부총리는 한국이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양궁에서 메달을 싹쓸이 한 것을 언급하면서도 일본이 육상 계주 400m에서 은메달을 딴 것을 놓고 "(일본은)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경쟁하는 종목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거북스런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담장 내 분위기는 대체로 좋았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한·일은 지난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뒤이어 일본 아베 정권의 잇단 우경화 행보로 관계가 악화되면서 지난해 2월 최종적으로 만기를 재연장하지 않은 채 협정을 중단했다. 국내 달러 부족시 다른 나라에서 즉각 달러 등 주요국 준비통화를 빌려 올 수 있는 장치인 통화스와프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해 본 한국으로선 제2의 외환보유고로 여겨지는 강력한 안전망이다.
지난 2001년 이후 이어져온 통화스와프가 14년만에 종료된 데 대해 당시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만기 재연장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때때로 한국이 요청해보면 생각해보겠다는 식의 발언을 내놓았다. 우리 측은 이명박 대통령 독도방문 이후 일본 측이 만기가 종료되는 스와프에 대해 일본 측이 그대로 회수해 버렸으며 달러 수급상 긴요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양측 모두 깊은 감정의 골을 드러냈고, 상당기간 이같은 상태가 지속됐다.
이런 관점에서 이날 통화스와프 체결 제안은 사실 '깜짝 제안'에 가깝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한일 통화스와프가 재개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정부는 회의를 이틀 앞둔 25일까지 "한·일 통화스와프는 이번 회담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못박은 바 있다.
|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와 아소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7차 한일재무장관회담을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
상황이 바뀐 건 이날 오전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내에서 공식회담 의제로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중 관계 냉각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전략적으로 균형추를 조정하겠다는 구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날 새벽 미국에서 열린 잭슨홀미팅에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밝힌 게 일부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된다. 갑작스런 통화스와프 제안 배경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통화스와프가 당장 시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양측의 경제 협력 관계를 고려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경상 수지 흑자, 외환보유액 등 대외건전성 문제는 준비된 형편"이라며 "통화스와프라는 것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통화스와프를 많이 체결하자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불확실성이 굉장히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통화스와프를 많이 체결하고 있다"며 "양국 간 경제협력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 오늘 저희가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유 부총리는 또 이번 회의를 통해 "최근 대내외 여건의 불안정이 지속하는 가운데에서도 양국 간 경제·금융 협력 관계가 굳건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브렉시트 결정 등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양국 간 정책 공조를 더욱 긴밀히 해 나가기로 했다"며 "보호무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양국이 단호하게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양국은 다음달 초 열리는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 등에서 보후무역주의 배격에 대해 공동의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양측은 아울러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대북 제재 이행을 위해 긴밀히 공조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