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1살이에요."
‘미군위안부’ 피해자 박미경씨(가명·60)는 먼저 나이를 알려줬다. 7월19일 경기도 의정부 고산동의 기지촌 여성 인권단체 ‘두레방’에서 만난 그녀다.
기자에게는 ‘어머니뻘’이었다. 인터뷰 전에 서먹한 분위기를 풀려고 “제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왠지 이 말을 아껴두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뷰 오기 전 그녀가 1970년대 초반부터 기지촌을 겪었다고 들었다. 직접 만난 미경씨가 생각보다 젊어 보여 다소 의아했다. 미경씨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놨다. 궁금증도 서서히 풀려 나갔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미경씨는 작은오빠와 함께 7살 때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세상은 일찍부터 미경씨에게 차별의 시선을 보냈다.
“그 당시만 해도 보육원 아이들을 학교 애들이 따돌려요. 따돌리니까 성격이 내성적이게 됐어요. 중학교까지는 들어갔어요. ‘중학교는 따돌림이 없겠지’ 했어요. 하지만…. 결국 한 1년 다녔나 봐요. 중학교를.”
더는 학교에서 버틸 수 없었다. 미경씨는 서울 사는 언니 집을 찾았다. 하지만 언니들도 함께 지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미경씨는 홀로 서울 영등포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1971년, 그녀 나이 고작 열다섯이었다.
1971년, 그녀 나이 고작 열다섯이었다.
“직업소개소에 갔더니 ‘일어서 보라’ 하더라고요. 일어섰더니 다시 ‘앉으라’고 하고. 소개비 1만5000원에 나를 경기도 연천 기지촌에 보냈어요. 몰랐는데 그곳에 가 보니 주인(포주)이 군인을 받으라는 거예요. (중략) 주인한테 (상처가 나서 아프다고) 말했는데 주인은 상관 안 하고 또 군인을 넣더라고요. (아파서)앉아 있지도 못했어요.”
직업소개소의 사기로 기지촌에 가게 된 미경씨다. 그녀는 손님으로 온 한 군인에게 “나가게 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 군인은 포주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포주는 그녀를 동두천 보산동의 기지촌으로 넘겼다. 동두천에서도 3~4개월 정도 지내다 포주에 의해 다시 의정부 뺏벌마을로 넘겨졌다. 이 모든 일은 그녀가 15~16살 때 벌어졌다.
Q 미경씨처럼 미성년자들이 기지촌에 많았나요.
A 뺏벌마을에는 비슷한 또래가 많았어요. 절반 이상은 미성년자였어요.
Q 그 당시에 기지촌 여성은 ‘등록’을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이렇게 많은 미성년자들은 어떻게 ‘미군위안부’가 됐나요.
A 포주가 어디로 데리고 가서 어떤 아저씨가 가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줬어요. 그걸로 검진을 받았어요. 그 당시 주민증(나이)이 저하고 6살 차이 났어요. 주민증 나이가 21인가 22인가 그랬어요. (중략) 그런데 애들(미성년자)이 지금은 성숙하잖아요. 그 당시는 뚜렷했거든요. 어린애(미성년자)하고 스무 살 먹은 애가 딱 표시가 났어요. 그런데 (공무원이나 경찰이 미성년자를 보고도) 아무도 제재를 안 했어요.
어린 미경씨는 기지촌에서 빚에 시달려야 했다. 뺏벌마을 포주는 미경씨가 200달러의 빚이 있다고 했다. 미경씨가 여러 기지촌을 옮겨가는 동안 포주가 소개비로 쓴 비용이 그녀에게 ‘빚’으로 돌아왔다.
“한 달에 몇 만원 가져가면 그 돈 중 이자를 포함해서 빚을 갚아요. 돈 몇 만원 쥐어보지, 돈 십만원 이런 목돈을 안 줘요. 빚을 까면 가구를 넣어줘요. 옛날 자개장롱 같은 것을 돈 대신 잘 안겨주더라고요. 목돈을 못 만져봤죠.”
목돈이 없다 보니 도망치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 해도 여성이 빠져나가기 힘든 곳이 기지촌이다. 국가가 기지촌을 군부대 주변에 계획적으로 조성했기에 기지촌 여성 다수는 고립돼 있었다. 지역공직사회·경찰이 포주와 유착해 기지촌 여성을 감시했다.
“도망가다 잡혀오면 두들겨 맞아요. 그러고 나서 포주가 도망간 사람 잡으러 갈 때 든 경비, 그런 돈을 다 아가씨한테 얹어버려요. 두들겨 맞고 빚은 불어나요. 여기(뺏벌마을)는 외진 데라 더 도망가기 어려워요. 예전에 여기가 다 밭이었거든요. 파출소에 말해도 소용없어요. 포주하고 여기(지역경찰)하고 다 연결돼 있어요. (중략) 이아무개 경장인지 있었는데 나중에 클럽(기지촌 성매매업소) 만들었더라고요.”
뺏벌마을에서는 미군범죄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미경씨는 늘 두려웠다.
“맞은 애는 엄청 맞아요. 칼 맞은 애도 있고요. (기지촌 여성을) 미군이 들고 집어던진 적도 있고. 폭행은 항상 있었어요.”
범죄만큼이나 두려웠던 건 미군의 ‘컨택’과 한국 보건 공무원들이 벌이는 ‘토벌’. ‘컨택’은 미군이 한 기지촌 여성을 ‘성병이 있다’고 지목하면 즉시 낙검자로 분류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컨택’은 실제로 성병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토벌’은 한국 공무원들이 성병 검진증(패스)이 없는 여성을 잡는 것이다. ‘컨택’과 ‘토벌’ 두 경우 모두 ‘몽키하우스’라 불렸던 낙검자 수용소에 감금됐다(스토리펀딩 1화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참조). 감금된 여성은 정부가 관리하는 ‘몽키하우스’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다.
“성병 걸린 미군 애들이 와서 병이 저한테 걸렸다 하면 무조건 (낙검자 수용소로) 가야 해요. 그런데 미군들이 실상은 막 얘랑도 자고 쟤랑도 자고 그러니까요. 지가 미워하는 애를 찍어요. 찍힌 애는 졸지에 가서 페니실린 맞고 3일 기다려야 해요. 페니실린 주사는 아무리 참을성이 강해도 그건 못 당해요. 맞고 부작용 나는 애도 봤어요. (입에) 거품 물더라고요.”
“나라에서 성병검사만 하고…. 그때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관심 가졌으면…. 포주와 아가씨 관계를 법적으로 생각해 줬으면…. 이용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맞고 이용당하고….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차분하게 말을 잇던 미경씨는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2014년 6월부터 이어진 ‘미군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의 법정에서도 이 말을 했다. 그때도 울었다.
인터뷰 말미에 미경씨에게 물었다.
Q 돌아보면 어떤 점이 제일 아쉬우세요.
A 내 삶은 망가졌죠. 나도 다른 사람처럼 애기도 한번 낳아보고 싶고. 이제는 나이 있으니까…. 그런 게 아쉽더라고요. 나도 시집 한번 가보고 싶고, 애기도 내 애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고….
미경씨는 눈물 자국이 번진 얼굴로 기자를 배웅했다. 미경씨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앞서 아낀 말, “제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는 끝내 꺼내지 않았다.
이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 펀딩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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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1.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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