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이슈분석] 한일 통화스와프, 관계개선 강조하려다 毒杯되는 건 아닐까

  • 세종=이재원 기자

  • 입력 : 2016.08.28 08:53 | 수정 : 2016.08.28 10:19

    한국으로서는 독배(毒杯)가 되는 것은 아닐까. 손해는 없는 장사라지만 결국은 일본에 칼자루를 쥐게 해주는 게 아닐까.

    지난 2015년 2월 종료됐던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다시 체결하자는 논의가 시작된다. 통화스와프 협정이란 외화가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화 등을 빌려오는 것을 말한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것 같은 효과가 있다. 세계 경제가 불안할 때마다 대규모로 외화가 빠져나가는 경험을 한 한국에는 경제안정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다.

    문제는 그동안 일본이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정치적인 지렛대로 이용해왔다는 점이다. 엔화가 국제통화인데다 외환 보유액도 엄청나고, 순채권국이기도 한 일본은 실질적으로 국가부도 우려가 없고, 통화스와프 계약 역시 별 필요가 없다. 일본은 지난 5월 기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조254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한 국가다. 작년 말 기준 대외 순채권액은 339조엔(당시 환율 기준 2조8200억 달러)으로 세계 1위다.

    이때문에 일본은 통화 스와프 계약은 일본이 한국에게 주는 일방적인 시혜(施惠)라며 한일간 정치적 마찰이 생길 때마다 통화 스와프 계약 종료를 일종의 경제보복 카드와 대외 선전 재료로 사용해 왔다.

    한국은 일본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을 때도 실제로 통화스와프를 사용한 일은 없다. 물론 통화 스와프는 실제 사용하지 않아도 맺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일종의 보증효과를 낸다. 또 한일간의 관계 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정치마찰이 있을 때마다 이를 ‘카드'로 이용할 것이 분명한 일본과의 계약이 그렇게까지 필요한지, 우리가 먼저 통화스와프 논의를 꺼내야만 했는지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아소다로 일본 재무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시작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아소다로 일본 재무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시작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경제적으로만 봤을 땐 필요한 계약

    통화스와프 추진 논의는 한국이 먼저 꺼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대외건전성 문제에서는 준비된 상태지만, 통화스와프는 여러 나라와 많이 할수록 국제경제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올 초까지만 해도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 1월 정부업무보고를 마치고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보조장치로 검토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한일 통화스와프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뭐가 바뀐 것일까.

    ①국제경제 불안
    정부는 지난 6월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가결되며 세계 경제 불안 요인이 새로 생겼고, 최근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며 미국이 연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점 등을 든다. 특히 미국 금리 인상의 경우 전 세계에 나와있던 자금이 미국으로 환류되면서 일부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경제위기가 생길 수 있는 등 불안요인이 많아졌다.

    ②일본과의 관계 개선과 중국과의 마찰
    한국과 중국이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중국의 경제 보복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 강화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일왕(日王)의 위안부에 대한 사과 문제 등으로 표면화됐던 양국 갈등이 올들어 다소 전기를 맞는 상황이며 정상회담이 임박해 있기도 하다.
    유일호 부총리는 “양국 간 경제협력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 한국이 논의를 제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정치적으로 이용된 전력 있어 우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이 무턱대고 반길 일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이 늘 한국의 요청을 일본이 들어주는 형태로 진행돼 일종의 ‘빚'이 되고 있고, 실제로 정치적인 갈등이 있을 때 일본이 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①한국에 대한 영향력의 상징으로 생각
    한국과 일본은 지난 2001년 처음으로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문제는 일본 입장에선 이 협정에 큰 경제적 실익이 없어, 정치적인 측면에서 유지되는 ‘시혜성 협정'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한일간 통화스와프는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에 130억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확대됐다.
    일본은 애초 통화스와프 규모 확대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한중 통화스와프가 40억달러에서 대폭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중국과 같은 규모까지 확대했다. 한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한국에 대한 영향력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日王)의 사과를 요구해 양국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자 당시 일본은 경제보복 수단으로 통화스와프 중단을 시사했다. 이후 실제로 통화스와프 규모는 점차 줄었다. 양국은 2015년 2월 100억 달러 규모로 남아있던 마지막 통화스와프 협정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이 통화스와프를 일종의 경제 압력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통화스와프를 중단하며 “순수하게 경제 금융적으로 판단했다”고 했지만,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 외신에서는 “독도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발표된 것이어서 주목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②’한국경제 취약성' 상징 될 우려도
    한국의 통화 스와프 집착 자체가 한국경제의 저평가를 부를 우려도 있다. 한일 통화스와프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일본측은 ‘한국의 요구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응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통화 스와프가 필요할만큼 한국경제가 외환문제에 취약하다고 세계에 선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이번에도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은 한일 재무장관회의가 열리기 전인 지난 24일 “한국 쪽에서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검토하겠다”며 일본이 나서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7월말 기준 3714억 달러로 넉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384억 달러를 인출할 수 있는 다자 통화스와프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 체제도 이용할 수 있고 중국과 3600억 위안(약 64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도 체결한 상황이다. 당장 외환이 부족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인 것이다.
    상징적인 협력 방안이 많이 있을 수 있는데, 굳이 시급한 필요도 없고 한쪽 편이 혜택을 내리는 듯한 통화 스와프를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지적이 나온다. 다시 한일관계에 마찰이 생길 때마다 일본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하나 쥐게 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긍정적… “실익 거의 없다”는 의견도

    물론 순수하게 경제적으로 봤을 때는 바람직한 계약이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 추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장은 “정치적인 논리를 배제하고 경제적으로만 봤을 때는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은 하는 게 좋다”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양국 통화스와프 협정이 중단된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크지만 많은 외화를 보유하는 것은 그만큼 비용이 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면서 “통화스와프가 많아지면 외환보유액을 줄이고 기회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뿐만아니라 아시아 역내에서 금융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해 외환보유액을 줄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국제금융 협력체계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한일 통화스와프는 체결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성 교수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환율 이슈가 있다”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많은 양국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도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긴 했지만 중국은 외환 시장이 통제된 국가라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일본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만큼 효과도 크다”고 덧붙였다.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실익도 별로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다고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 만큼 안 좋게 볼 이유는 없다”면서 “다만 세계 경제가 달러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실익이 크지는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국 관계가 좋다는 정치적인 제스쳐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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