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그곳에 여성들이 있었다. 인신매매, 사기 등으로 기지촌에 오게 된 여성들은 미군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국가는 이 문제를 제재하기는커녕 조장했다. 또 ‘성병검진’을 명목으로 여성에게 구금과 치료를 강제했다. 시사저널은 기획보도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을 통해 이를 집중 조명한다.
기획=시사저널 디지털뉴스팀
저기, 쇠창살 너머 세상이 보인다. 창밖 풍경은 철조망과 담장이 둘러쌌다. 이곳은 적막한 소요산 기슭이다. 소리쳐도 들을 사람이 없다. 나갈 수 없다. 하늘만 파랗다.
40년 전, ‘아직은 어린’ 여성들도 이렇게 쇠창살 사이로 밖을 바라봤다.
이곳은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기슭의 2층 건물. 낙검자 수용소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갇혀 있었다. 미군들은 이곳을 ‘몽키하우스’라 불렀다. 매춘굴을 부르는 미국 속어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보건 공무원들은 매주 1~2회 기지촌 여성을 검진했다. 성병 유무를 판단하는 검진이다. 주한미군에게 성매매를 하는 이가 그 대상이다. 정기적 검진에서 떨어진 여성은 이곳에 수용됐다.
현재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는 폐허로 남아 있다. 취재진은 7월초께 ‘몽키하우스’를 찾아 나섰다. 2층 건물인 이곳에 수용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려던 흔적은 여전하다. 건물 입구 맞은편 약 30m 거리에 초소가 있다. 초소의 창은 건물 입구를 주시한다. 1층은 검진실, 2층은 여성이 수용되는 방이다. 1층 방은 4개다. 입구 왼쪽 방은 입구를 볼 수 있도록 창이 뚫려 있다. 2층 방은 6개인데, 병영 생활관처럼 방 양쪽에 침상이 늘어섰다. 방 양편 침상에서 여성이 칼잠을 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거공간치고 매우 음습하다. 정오에도 볕이 잘 들지 않았다. 두꺼운 엑스(X)자 쇠창살로 덮여 있는 창도 볕을 가린다. 2층에는 생활공간과 화장실 외에 작은 방이 있다. 이 방에선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볼 수 있다. 2층에서 한 층 더 올라서면 옥상이다. 옥상의 난간은 낮다. 난간 가까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약 10m 높이다.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이래저래 건물에 들어가면 퇴로 없이 갇히는 이곳 ‘몽키하우스’다.
‘미경이는 소요산 아래 철망이 쳐진 이층 방에서 3박4일 예정으로 원숭이 흉내를 내러 가고 없다.’
- 문학작품에 나타난 ‘몽키하우스’. 윤흥길 《돛대도 아니 달고》
낙검자 수용소를 운영한 보건 당국의 표면적 이유는 이랬다. “기지촌 여성의 성병감염을 막는다.” ‘국가가 성병을 치료해 주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지촌 여성은 스스로 “성병을 치료해 달라”면서 낙검자 수용소에 오지 않았다. 국가는 성병검진에서 떨어진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 당국이 성병검사 시 발급하는 ‘패스(보건증)’가 없는 여성, 최근 성병검진을 받지 않은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주한미군이 특정 여성을 ‘성병이 있다’고 지목해도 곧바로 낙검자 수용소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미군에게 지목당하면 성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낙검자로 분류됐다.
1972년에 기지촌 성병 관리 책임을 맡았던 보건사회부 관계자 “지역 관계자들이 검사에 불합격한 여성을 발견하게 되면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강제로 (소요산 소재 격리센터로 가는) 버스에 태웠다.”
“지역경찰과 성병진료소 관계자가 감염되었다고 판단되는 매춘 여성의 집과 방에 들어가 그 여성을 강제로 치료센터(낙검자 수용소)로 보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캐서린 H.S. 문 《동맹 속의 섹스》-
보건 당국은 주한미군에게 성매매를 하는 기지촌 여성을 ‘관리’ 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관리’는 ‘보호’와는 의미가 달랐다. 당국은 ‘성병 치료’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한 여성 ‘본인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강제치료’였다.
기지촌 여성은 낙검자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지극히 두려워했다. 이곳에 한 번 들어오면 쉽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강제구금’이다. 여성들은 길게는 한 달, 최소 4일간 갇혔다. 갇힌 여성은 건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3~4일에 한 번씩 하는 성병검진에서 떨어지면 다시 다음 검진을 기다려야 했다. 이것이 반복되면 수용 기간이 한 달 이상이 될 때도 있다. 치료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감금기간 일할 수 없는 것도 포주에 의해 빚으로 돌아온다. 이 때문에 낙검자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여성도 많았다. 수감된 이후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거나 추락사하는 여성도 있었다.
“이게 다 과수원 자리야, 배밭, 포도밭. (낙검자 수용소)차에서 내릴 때 (언니들이)이런 데를 뚫고 막 도망해서 가. 도망을 가도 버스가 없으니까 도루 잽혀서 오는 거야…(중략)거기 들어 안 갈라고 도망가면 또 잽혀 오고…꼭 감옥살이잖아. 봤잖아? 철조망?”
-새움터 기획, 기지촌 피해 여성 증언록-
강제구금’도 두려웠지만 낙검자 수용소의 공포는 또 있었다. 바로 ‘페니실린 주사’다. 수용된 여성은 이 주사를 맞아야 했다. 1970~80년대 낙검자 수용소에 갇혔던 이들은 ‘페니실린’이라는 말에 모두 얼굴을 찌푸린다. 너무나 아팠다.
“무지 아파. 꼼짝 못해. 딱 맞으면 쥐가 딱 나. 아무리 참을성이 강해도 그건 못 당해요. 맞고 부작용 나는 애도 봤어요. (입에) 거품 물더라고요. ”
-기지촌 피해 여성 박미경(가명)씨 증언-
페니실린의 무서움은 단지 아픈 데 그치지 않는다. 부작용이 매우 심했다. 일반 의료기관에서 자주 쓰지 않는 약물이었다.
“기지촌 여성에게 쓰인 ‘벤자딘 페니실린’은 일반 의료 기관에서는 거의 안 씁니다. 극심한 부작용이 있고 쇼크에 빠져서 그 자리에서 구급처치도 소용없이 환자가 사망하는 일들이 드물지 않게 있는 약물이에요.”
-기지촌 의사로 근무했던 문정주 서울대 의과대학 겸임교수-
증언자들은 페니실린 주사로 인한 쇼크사가 빈번했다고 전한다. 여성이 주사를 맞지 않기 위해 도망치다 낙검자 수용소 옥상에서 추락사한 사례도 있다.
“주사 맞구서 거기(낙검자 수용소 옥상)서 떨어져 죽구. 기도 안 차, 으이구….”
-새움터 기획, 기지촌 피해 여성 증언록-
당국도 이를 몰랐던 게 아니었다. 보건사회부와 법무부는 당시 이런 내용의 문서를 주고받았다. ‘낙검자 수용소에 페니실린 쇼크사 사례가 잦다’고. 그래서 이 사고를 수사할 시 응급조치를 다한 의료진에게 면책을 해 주라고 말이다.
‘몽키하우스’의 슬픈 역사는 소요산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역마다 규모의 차이가 있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동두천·의정부·평택 등지에 정부 주도로 공식 설치됐다. 그리고 버젓이 30~40년 간 운영됐다. 전국 기지촌 여성 중 상당수가 이곳을 거쳐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지촌 주변에 설치된 ‘몽키하우스’,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상상도 하기 어려운 비인권적 일들. 이쯤에선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국가는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 민간인인 기지촌 여성의 삶에 왜 이렇게 깊숙이 관여한 걸까. 그 물음의 답은 정부가 직접 기지촌 여성들을 부른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미군위안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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