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사이의 최대 외교 갈등 사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난해 말의 이른바 ‘12·28 합의’로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는가. 일본 정부가 12·28 합의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10억엔의 치유금을, 7월28일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에 조속한 시일 안에 출연하기로 함에 따라, 이런 물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삼지 않고 돈을 출연하기로 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이로 인해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더욱 곤궁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12·28 합의와 ‘위안부, 원폭 피해, 사할린 동포 등 3대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2005년 정부의 방침 사이의 모순이다. 박근혜 정부는 10억엔의 출연금을, 배상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의료·간병 등을 위한 지원금으로 보는 일본 정부와 달리, 배상 성격의 자금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2005년 위안부 등 3대 미해결 원칙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외교적으로 갈등을 해소할 때, 양국 사이에 이견이 있는 문제를 회색 지대로 만들어 놓고 각자 유리하게 해석하는 방법이 종종 사용되곤 하지만, 이번 건은 그런 식으로 넘어가기엔 너무 원칙의 훼손이 심각하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12·28 합의로 2005년 원칙이 해소되었는지, 아니면 계속 2005년 원칙에 따라 미해결 과제로서 해결을 추구해 나갈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12·28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10억엔의 출연을 계기로 ‘도덕적 우위의 입장’에 서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겠다는 방침을 흘리고 있지 않은가.
아울러 10억엔의 출연금 성격과 합의의 후속 이행을 대하는 정부의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쪽은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12일 직접 기자들과 만나 자금의 용도와 소녀상 문제를 설명했지만, 우리 쪽은 한·일 외무장관 전화 통화 뒤 달랑 한장짜리 ‘외교부 자료’를 내놨을 뿐이다. 그것도 10억엔 성격에 대해선 일언반구 설명도 없었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설명하는 데 비해 우리 쪽이 그렇지 못하면 상대 주장과 논리가 국제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원칙 없고 줏대 없는 정부가 상처 위에 계속 소금을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