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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박태환 키즈'가 없다

입력 2016-08-11 05:02 수정 2016-08-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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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수영의 '메달 성패'는 '펠프스 키즈(Kids)'를 키워 낸 나라와 그러지 못한 나라로 나뉘었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수영 천재를 품은 나라였지만, 그의 뒤를 잇는 '키즈'를 키우지 못해 이제 수영 불모지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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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프스 키즈'는 있고 '박태환 키즈'는 없다

'마린 보이'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박태환(27)은 10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수영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100m 예선에서 49초24의 기록으로 4조 4위에 그쳤다. 예선 참가 선수 59명 가운데 공동 32위에 머문 박태환은 상위 16명이 겨루는 준결승에 나서지 못했다.

지난 7일 주 종목인 자유형 400m 예선 탈락(3분45초63), 8일 자유형 200m 예선 탈락(1분48초06)에 이은 충격적인 결과였다. 마린 보이의 예선 탈락은 새벽잠을 쫓아내며 TV 중계를 보던 스포츠 팬의 마음에 상처로 돌아왔다. 13일 열리는 자유형 1500m는 출전을 포기했다.

박태환은 100m 경기를 끝마치고 4년 뒤 도쿄올림픽 출전 의지를 드러냈다. 2020년이면 그의 나이 31세. 착실하게 준비해 도전한다고 해도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2 런던올림픽 때 기량을 그대로 보여 주기는 힘들다. 한때 한국을 넘어 세계 수영계를 호령한 박태환의 화려한 수영 인생도 막바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수영계에 '마린 보이'의 명맥을 이어 갈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 수영은 리우 올림픽에서 '노 메달'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김서형(22)과 안세현(21)이 각각 여자 개인 혼영 200m에서 한국 타이기록(2분11초75)과 접영 200m 부문 준결승 진출(2분08초69)을 이루긴 했으나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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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펠프스 키즈'를 키워 낸 미국과 일본은 리우 올림픽에서 빼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미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마이클 펠프스(31)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이후 포스트 펠프스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수영계로 향하며 수영 붐이 일었다. 리우 올림픽 여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56초46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케이티 레데키(19·미국)가 대표적인 '펠프스 키즈' 다.

일본 역시 펠프스의 후예들이 약진하고 있다. 리우 올림픽 남자 개인 혼영 4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세토 다이야(22·일본)는 "펠프스처럼 되고 싶어서 수영을 시작"한 경우로 일본을 대표하는 수영 간판선수로 성장했다. 세토와 같은 종목에서 아시아 신기록(4분06초05)을 세우고 금메달을 획득한 하기노 고스케(22)는 "펠프스는 내 롤모델이다. 그와 같은 선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는 펠프스를 따라잡을 것이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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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없는 수영계…박태환은 돌연변이

미국에 펠프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박태환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 '포스트 펠프스'가 싹을 틔우고 있을 때 한국은 제2의 박태환을 키우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투자 없는 현실과 척박한 인프라 환경'에서 이유를 찾았다. 서울 소재 체육대학에서 수영을 지도하는 A교수는 "우리나라는 국제 기준에 맞는 50m 레인을 갖춘 수영장이 손에 꼽힐 정도다. 그나마도 지역 문화센터 형식으로 운영된다"며 "박태환 키즈가 되고 싶어도 수영할 곳이 없다. 미국·일본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쓴소리했다. 중도에 수영을 포기하는 선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란 지적이다.

A교수는 "우리와 가까운 일본만 봐도 보통 한 개 대학팀 소속 선수만 40명가량 된다. 전국 단위로 선수를 모으면 엄청난 규모다"며 "그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발전하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수층이 얇다. 설령 뛰어난 선수가 있어도 '경쟁자'가 없으니 점차 퇴보하는 형국이다"고 지적했다.

한국에도 될 성부른 '떡잎'이 있긴 하다. '기대주'로 평가받는 이호준(17·서울대사범대학부설중)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4월 열린 동아수영대회 겸 수영국가대표선발전 자유형 400m에서 3분51초52를 기록, 리우 올림픽 경영 국가대표 후보로 선발됐다. 이 기록은 올림픽 A 기준기록(3분50초44)과 근소한 차이일뿐더러 박태환이 중학교 3학년인 제33회 전국소년체전에서 기록한 3분56초56보다 5초04나 빠르다. 한 수영인은 "박태환이 그 나이였을 때와 비교하면 이호준의 기량이 더 낫다"고 설명했다.

동아수영대회 여자 고등부 자유형 800m에서 8분40초79로 한국기록을 경신한 조현주(16·울산스포츠과학고)와 자유형 400m를 4분12초14로 끊으며 한국기록을 세운 이의섭(16·파이크스빌 고교)도 두각을 보이는 어린 유망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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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교수는 "최근 중·고교 선수의 자유형 종목 기록은 실업팀 소속 성인 선수와 견줘도 1초 안에서 접전을 이루는 추세다. 기량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며 "문제는 이런 유망주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성장한 20대 초에도 꾸준하게 발전했느냐의 여부다"고 설명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46)는 "연맹과 국가의 지속적인 노력이 없으면 비인기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기 어렵다. 제2의 박태환·김연아·황영조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린 그냥 어쩌다 생겨난 돌연변이일 뿐이다"고 말했다. A교수는 "(황영조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지금 수영 현실에서 박태환은 돌연변이다. 다시 그런 선수가 나오게 하려면 투자와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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