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5~17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와 자체 취재를 종합한 결과 고이케 후보가 다른 도지사 후보보다 앞서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고이케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4개 야당(민진ㆍ공산ㆍ사민ㆍ생활당)이 합심해 내세운 단일후보인 도리고에 슌타로(鳥越俊太郞ㆍ76)와 자민당이 공식적으로 추천하고 있는 후보인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ㆍ64)가 뒤를 이었다.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서도 고이케 후보가 도리고에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이케 후보는 지난 2007년 아베 신조(安倍 晋三) 1기 내각 당시 방위상을 지낸 인물로, 당시 아베가 국정 전면으로 내세운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고이케 전 방위상은 2011년 12월 재특회가 주최한 “어떡하나요? 센카쿠, 북방영토, 다케시마를 잃고 있고 있는 일본”이라는 강연회에서 강연자로 참석했다. 그는 방위상으로 지낼 당시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하기 위한 대대적인 국제발신을 추진해오기도 했다. 2014년 니혼테레비의 ‘심층 NEWS’에도 출연해 “고노담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대대적인 정보발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도의 유력신문에도 “위안부 강제연행을 주장하는 아사히(朝日)신문의 보도는 허위보도였다”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아베 내각의 측근이었던 그가 자민당의 ‘미운털’로 전락한 이유는그의 정치행보에 있다. 고이케 후보는 지난 2008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의 지지를 요청한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현 경제재생상의 손을 뿌리치고 직접 자민당 경선에 출마했다. 실제로 이시하라 경제재생상은 당시 아소 다로(麻生 太郎) 전 총재에게 패배한 요인 중 하나가 “고이케가 표를 분산시켰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고이케의 독자노선은 2012년에도 계속됐다. 병환을 이유로 총리직에 사퇴했던 아베가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출마를 표명했다. 그는 고이케가 당연히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이케는 아베가 아닌 이시바 시게루(石破 茂側) 현 지방창생담당상이었다. 이후 아베는 자신을 ‘배신’한 고이케에 반감이 생겼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고이케 후보도 이를 의식한 듯 도쿄 도지사 출마를 표명한 후 일본 외국특파원 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베 2기 내각과 관계가 나빠진 것과 관련 “전부 정치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한편, 코이케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수적인 외교전선을 우려한 기자의 질문에 극우적인 행보로 물의를 일으킨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慎太郎) 전 지사를 언급하며 “이시하라처럼 대응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오가사와 산호를 지키기 위해 중국 불법 어선에는 의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도쿄의특별구로, 도쿄 23구에서 남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군도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중국 어선이 불법으로 산호를 채취해 외교적으로 마찰을 빚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는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도쿄도지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합의한 제 2 동경한국학교 설립에 대해서도 “간단하다. 백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이케 후보는 현재 20~40대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높은 지지를 자랑하고 있다. 산케이는 여론조사에 응한 무당파 여성의 약 30%가 고이케를 지지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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