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che) KDI 경제정보센터 - COLUMN - 김두얼 박사의 경제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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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제성장률 높으면 평균 신장도 크다?
필자 김두얼(KDI 연구위원) 발행호 2008년 01월호
한 사회 구성원들의 평균 신장은 그 사회의 소득수준이 결정한다.
인간은 대략 20대 중반까지 키가 자라는데, 이 기간 동안 영양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일을 많이 해서 영양분이 부족하면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신장과 영양섭취 혹은 생활수준 간에 양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의학적.통계적 사실에 근거해서 경제사학자들은 인류의 물질적 삶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분석해 왔다.
경제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과거의 경우, 그 시대 사람들의 신장은 당시의 생활수준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신장 변화에는 크게 세 국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단계는 원시시대로부터 산업혁명 이전까지의 수천 년에 걸친 기간이다.
고고학자.인류학자.경제사학자들이 유골을 이용해서 장기적인 생활수준 변화를 추정하는 대형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류의 신장은 원시시대로부터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18세기 중엽까지 꾸준히 감소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전근대사회에서는 매우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인구가 증가해 왔는데, 인구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생활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되었고, 이것이 신장 감소를 야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시기인데, 이 기간 동안에는 평균 신장이 정체 혹은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가 축적된 곳은 미국이다.
군인들의 평균 신장 추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1830년경부터 1880년대까지 평균 신장이 약 3cm 가량 감소하고,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1800년대 초반 수준을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양상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인데, 일차적으로는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생활환경의 악화가 주범으로 지목된다.

마지막은 산업혁명 이후 시기인데, 산업화를 경험한 나라 국민들의 신장은 급속도로 상승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 직전인 18세기 중엽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6cm였는데, 1990년대에 와서는 178cm까지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혁명이 물질적 생활수준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 조상들의 키가 얼마나 되었고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키에 대한 체계적 정보를 담은 가장 오래된 사료는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의 병적(兵籍)이다.
군사를 뽑을 경우에는 신체조건이 중요했기 때문에 키를 비롯한 신체적 특징을 조사하고 기록해 둔 것인데, 이 자료에 따르면 군인들의 평균 신장이 약 7.3척이었다.
한 척이 나타내는 길이가 명확하지 않은 점 등으로 이 값을 현재 단위로 추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군인들의 평균 신장은 대략 155.5cm 였다고 추정된다.
이 외에도 조선 중기 후기의 병적자료가 서너 건 더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 자료들을 종합해 장기적 신장변화 추이를 파악하는 작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제시대의 신장 자료는 식민지기 생활수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생활수준의 장기적 추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연구가 진척되지는 못하고 단편적인 사실만이 확인되고 있다.
일제 말 징병조사자료에 따르면 1938년 20세 남성의 평균 신장은 대략 161.7cm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식민지기 서대문형무소 수형자 자료로부터의 결과인데, 23~40세 남자 1,500여 명의 평균 신장은 164.1cm이다.
교도소 수형자들의 키가 징병대상자보다 더 크게 나타난 것이 수형자들 중 상당수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사상범들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인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진척된 다음에야 확인될 듯하다.

건국 이후엔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료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들처럼 1970년대 이후 산업화의 영향으로 평균 신장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20~24세 남성의 신장은 1979년 167.7cm였던 것이, 25년이 지난 2004년에는 173.8cm로, 약 6cm 증가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인의 경우 평균 신장이 12cm 증가하는데 200년이 걸린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 국민들의 키는 경제성장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북한의 상황은 열악하다.
탈북자들의 신체조건에 대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4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4cm로, 같은 나이 남한 남성보다 거의 10cm 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해방 이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북한 사람들의 신장은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성장의 성과와 대비되어 더욱 암울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국민들의 평균 신장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 간에 키의 편차도 커지고, 키로 인한 불평등과 차별도 심화됐다.
키가 작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이 늘고 있으며, 심지어는 키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하다.
신문.잡지 등에 빈번히 등장하는 키 관련 클리닉이나 키를 자라게 하는 수술 등에 대한 광고는 키 작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압박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반영하는 사례이다.

키에 따른 차별은 큰 키가 힘의 우위 혹은 육체적 우월성을 반영한다는 원초적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소득수준과 신장 간에 존재하는 양의 상관관계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외모와 관련된 차별들이 내포한 공통적 문제점은 외모라는 단편적인 정보가 한 인간의 무궁무진한 잠재능력을 판단하는 근거로는 너무도 미약하고 왜곡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키 와 관련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몰아내는 것은 단순히 소수자에 대한 배려 차원을 넘어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96년 신년호에 ‘Heightism’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키 때문에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차별을 열거하고 이것을 철폐하자는 운동을 선언했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첨부파일 0801-3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