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완성펼치기
자동완성접기

    김제시

    검색 영역
    한번에 검색
    콘텐츠 상세보기 도구 원문보기 인쇄 글자크기확대 글자크기축소 글꼴

    여러개 검색어를 한번에 검색할 수 있습니다

    • 검색어 1
    • 검색어 2
    • 검색어 3
    • 검색어 4
    • 검색어 5
    팝업닫기
    • 01.콘텐츠목차

    귀신사

    • URL Copy
    • twitter
    • facebook
    한자 歸信寺
    영어의미역 Guisinsa Temple
    이칭/별칭 국신사,구신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81[청도6길 40]지도보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서홍식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귀신사(歸信寺)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國信寺)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道允)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가 중창하였다. 원명국사숙종의 넷째 아들로 8세 때 대각국사 의천에게 출가하여 1122년(예종 17)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이 되었으나, 이자겸(李資謙)의 횡포를 보고 귀신사로 들어왔다. 이 무렵에는 구순사(狗脣寺) 혹은 구순사(口脣寺)로 불렸다. 이름이 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절 주위의 지형이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구순혈형(狗脣穴形)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전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1601년(선조 34) 승려 염화(拈化)·신허(信虛)가 부분 중수를, 1624~1633년 승려 덕기(德奇)가 대대적인 중창을 하여 여래삼존불을 봉안하고 승당·정문·미륵보전·시왕전과 천왕문을 건축하였고, 승려 도헌(道軒)이 나한전을 지었다. 1657년(효종 8)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1680년(숙종 6) 전각을 중수하였으며, 1707년(숙종 33) 승려 두감이 대웅전을 중수, 1715년(숙종 41)에는 팔상전을 중수하였다. 1823년(순조 23)에는 대적광전을, 1873년(고종 10)과 1884년(고종 21)에는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1934년에는 대적광전 등을 중수한 뒤 다시 귀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대적광전, 영산전,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다. 귀신사금산사에서 모악산 서쪽 고개를 통하여 전주시로 넘어가는 길옆 청도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에 속해 있으나 본래는 화엄종 소속이었다고 한다.

    보물 제826호 귀신사 대적광전(歸信寺大寂光殿)과 전라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귀신사 석탑(歸信寺石塔), 제63호 귀신사 부도(歸信寺浮屠), 제64호 귀신사 석수(歸信寺石獸) 등이 있다.

    0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작성자 비밀번호  
    의견내용
    등록
    • 위 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관리하고 있사오니 수정 요청사항이나 200자 이상의 정보성 댓글은 내가 쓰는 백과를 이용해주십시오.
      * 이용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욕설, 비방, 광고성 내용이 포함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200 / 200
    스팸 등록 방지
    reCAPTCHA challenge image
    다시 시도하세요.
    문자를 입력하세요 : 음성으로 들리는 숫자를 입력하세요 :
    새로고침
    음성
    문자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관련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집필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참고문헌 검색 닫기
    top
    0%
    10%
    20%
    30%
    40%
    50%
    60%
    70%
    80%
    90%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