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절도품’ 고려 불상 ‘운명의 7개월’

음성 지원 옵션을 선택해주세요.
레이어 닫기
기사입력 2015.08.03 오후 7:05
최종수정 2015.08.03 오후 9:45
[한겨레] 일본 돌려준 동조여래입상과 달리
관세음좌상은 관련 기록 남아 있어
법원, 내년 2월까지 반환 유예 결정
유출 여부 판단까지 진통 뒤따를 듯


고려 말기인 14세기 충남 서산 부석사에 봉안됐던 동조관세음보살좌상. 그 뒤 알 수 없는 경로로 일본에 흘러들어가 대마도 간논지(관음사)에 소장됐으나 2012년 도난범들이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가 압수됐다.

온화한 미소를 간직한 채 일본에서 400여년 만에 다시 건너온 고려 관세음불상이 운명의 기로에 섰다. 머리쪽 묶은 이 우아한 자태의 불상을 장물로 돌려줄 것인가. 약탈품으로 공인하고 국내에 보존할 것인가.

2012년 10월 일본 대마도 간논지(관음사)에서 도난범들이 훔쳐 들여왔다가 몰수된 14세기 동조관세음보살좌상의 반환 여부에 새삼 눈길이 쏠린다. 지난달 17일 도난범들이 대마도 신사에서 함께 훔쳤던 통일신라 동조여래입상이 대검찰청 결정으로 반환되면서 홀로 남은 이 불상의 법적인 처리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정제된 몸체양식으로 통일신라 불상의 ‘에이스(최고명품)’로 꼽히는 동조여래입상은 반환에 큰 걸림돌이 없었다. 일본 반출 경로가 드러나지 않았고, 소유권을 내세운 사찰·단체가 없다는 게 결정적 근거였다. 그러나 관세음불상은 상황이 다르다. 1330년 충청도 서산 바닷가 부석사에 주존불로 봉안했다는 당시 승려·신도들의 발원문이 남아있고, 이를 바탕으로 현 부석사 쪽에서 환수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대전지방법원은 2013년 2월 부석사 쪽이 낸 반환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반출경위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올 때까지 반환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뒤 불상은 접근이 차단된 채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중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0~12월 문명대(동국대 명예교수), 최성은(덕성여대 교수)씨 등 미술사학자와 보존과학자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두 불상을 조사했다. 조사위원들은 직접 불상들을 살펴보면서, 크기와 재질, 양식 특성 등을 검토했으나, 핵심인 유출경위는 단서를 포착하지 못한 채 두 불상의 제원과 옛 문헌 정보만 검찰에 보고했다고 한다.

문헌기록이 전무한 동조여래입상과 달리 관세음좌상은 관련 기록이 일부 남아있다. 1951년 소장처 간논지가 불상 뱃속(복장)에서 찾아낸 1330년 조성 발원문, 14세기말 왜구들의 잦은 서해안 약탈 내력을 적은 <고려사>와 일본 기록 <태평기> 내용들, 그리고 1526년 창건 때 불상을 봉안했다는 간논지의 약사 기록들이 전한다. <고려사>에는 1350년부터 고려가 멸망한 1392년까지 40년간 왜구의 침략이 집중적으로 벌어졌고, 우왕 때(1374~1388)는 378차례나 침략했으며 1352~1381년 다섯차례 왜구가 서산에 출몰했다는 기록 등이 남아있다. 정은우 동아대 교수는 2013년 발표한 논문 ‘서일본 지역의 고려불상과 부석사 동조관음보살좌상’에서 “서일본에 전하는 고려불상들은 50여점에 이르지만, 전래 내력이 복장물, 묵서로 밝혀진 사례는 거의 없어 왜구의 노략질에 따른 반출 가능성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고민스러운 건, 문헌자료들이 심증상 근거일 뿐 반출된 직접 증거는 없으며, 앞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점이다. 법원이 명시한 불상의 반환 유예 가처분 기간(3년)은 내년 2월까지다. 이 기간에 부석사 쪽이 반환을 요구하는 본안 소송을 내면, 검찰과 법원은 전문가들이 보고한 빈약한 문헌근거에 기대어 사실상 환수여부를 판가름해야 한다. 현재 부석사는 해방 이후 절집들을 다시 세운 사찰이다. 고려 때 절 유적이 전무해 학계 한켠에서는 고려 불상을 소장할 만한 적통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한 중견미술사학자는 “불상 반환에 반대하는 국민감정과 환수근거가 빈약한 현실 사이에서 법적 판단에는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 [인기화보] [인기만화] [핫이슈]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