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쪽에 주차해둔 차로 향해가는 길이 왜 이렇게 긴지 알수가 없었어. 둘은 누가 쳐다보든 말든 손을 꽉 붙잡고 있었어. 모든 인파들이 자신들과 반대쪽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 같았어. 이 시간엔 유흥가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있지 나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으니까. 둘의 어깨에 수도없이 많은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혔어. 거친 걸음걸이에 진로방해를 받은 사람들이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어. 맞잡은 손 안쪽에서 땀이 축축하게 나오고 있었어. 처음에는 앨빈을 잡아끌던 리바이였지만 지금은 앨빈에게 끌려가고 있었어. 앨빈이 큰 덩치로 길을 텄어. 영 느리게 걸으며 앞을 막는 사람들의 어깨를 손으로 잡고 치우기까지 했지. 눈에 뵈는 게 없었어. 가요. 하던 리바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했어.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서 마치 리바이가 뭐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앨빈은 그게 다 환청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머리 끝까지 차오른 긴장감에 둘은 지금 입한번 벙끗하질 않았으니까. 리바이는 자신의 손을 아프도록 쥔 앨빈의 손을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어. 확실히 먼저 열기에 사로잡힌건 자신이었어. 앨빈이 늘 은은하게 달궈져있는 상태라 스스로를 제어할수 있다면 리바이는 아니었어. 오늘 하루 폭발적으로 치솟은 감정. 성욕. 지금부터 집에 가서 뭘 할지,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할지에 대한 생각같은 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 자신이 두려워하던 게이섹스라 하더라도 섹스였어. 다른 사람과, 자신이 좋아하고 있는 사람과 몸을 맞댄다는 건 그게 어떤 형태가 됐든 설레고 가슴떨리는 일이었어. 앞서가는 앨빈의 등이, 그의 와이셔츠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어. 리바이는 그 모습을 한정없이 바라봤어. 역시 저 뒷모습이 좋았어. 늘 든든하고, 견고해보이는 등. 손을 뻗어 그 등을 뒷목에서부터 쓱 쓸어보고 싶었지만 리바이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는 데만 해도 벅차서 그럴 수가 없었어.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은 유흥가가 끝나고 둘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로 나왔어. 차까지 향해가며, 아직 차에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앨빈이 자동키를 들어 버튼을 눌렀어. 삐빅, 하며 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는 게 보였어. 일단 도로변에서 리바이를 조수석에 태우고 앨빈은 문을 닫았어. 흥분한 상태라 힘조절이 되지 않아서 문이 쾅 하고 닫혔어. 그런줄 어쩐줄도 모르고 앨빈은 순식간에 본넷앞을 돌아와 자신도 운전석에 탔어. 대번에 시동을 거는 앨빈의 손속이 허겁지겁하는 것처럼 보였어. 차들이 하도 쌩쌩 달리는터라 출발할 타이밍을 못잡고 있는 앨빈이 초조한지 다리를 떨기 시작했어. 젠장. 하는 말을 듣고 리바이가 고개를 들었어. 처음으로 들어보는 것이었어. 앨빈은 프랜과 대치하는 상태에서도 욕설을 뱉은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너무나 속이 탄다는듯 끓어오르며 말한 욕설 한마디가 리바이의 뒷머리를 둔탁하게 치는 것 같았어. 뱃속이 뜨거웠어.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어. 또한번 욕을 하려다가 필사적으로 그것만은 참은 앨빈이 타이밍을 잡아 차들 사이로 끼어들었어. 잠시 빵빵 하는 클락션소리가 들렸지만 앨빈은 깜박이를 켜지도 않았어. 일단 끼어들자 앨빈은 무섭게 액셀을 밟기 시작했어. 입술을 다 잘근잘근 물어씹고 싶을만큼 초조했어. 제기랄. 하고 앨빈은 속으로 생각했어. 지금 어느세월에 집까지 간단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이십분이 걸리는 그 거리가 천릿길처럼 느껴졌어.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지. 그냥 모텔에라도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안든건 아니었지만 그는 얼른 머리를 흔들었어. 모텔이라니. 끔찍했어. 리바이가 그런 곳에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없었어. 그리고 옆방에서 들리는 다른 연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대강 욕구를 해소하듯 풀고 방을 나오고 싶지는 않았어. 그런건 싫었어.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익숙한 침대 위에서, 천천히 하고 싶었어. 마구 속도를 올리는 앨빈의, 기어를 잡은 손 위에 리바이가 손을 겹친건 다음 순간이었어. 앨빈이 흠칫하며 리바이쪽을 흘끗거렸어. 리바이는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어. 앞서가는 차들의 라이트 불빛에 리바이의 얼굴이 얼룩졌어. 빛이 났다가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얼굴. 리바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앨빈의 손을 잡고 있었어.앨빈은 리바이의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한다는걸 알수 있었어. 섹스가 뭐라고, 그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을 지경이었어. 그러나 리바이로서는 떨리는 일이었어. 아마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걸 하나 꼽으라고 하면 그건 게이섹스일터였어.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그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이기도 했어. 앨빈과 자고 싶었어. 옷을 벗기고 온 몸을 핥고 앨빈이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고 싶었어. 그 욕구가 얼마나 큰지 말도 못할 지경이었어. 공포와 욕구는 완벽하게 양립했어. 무서웠어. 지금이라도 다 집어치우고 싶었어. 아까 앨빈의 스킨냄새에 홀려 먼저 꼬드겼던게 엄청난 실수처럼 느껴졌지. 그러나 또 정확히 그 공포의 크기만큼 앨빈을 원하기도 했어. 지금 당장. 내일도 아니고, 이 다음도 아닌 바로 지금. 그 심경에 리바이는 떨수밖에 없었어. 무섭습니까. 하는 잔뜩 가라앉은 앨빈의 목소리가 리바이의 귀에 꽂혔어. 리바이가 천천히 앨빈을 바라봤어. 앨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수밖에 없었어. 혹시 자신을 생각해서 원하는척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지금 무서워서 떨고있나. 당신은 그런 지경의 사람일까. 하는 생각. 그것을 반증하듯 앨빈은 그저 앞만 죽어라고 보고 있었어. 그 옆모습을 보며 리바이가 입을 열었어. 예. 하는 대답에 앨빈이 이쪽을 흘끗 보려다가 그냥 고개를 앞으로 고정시키는게 보였어. 무섭습니다. 하고 리바이가 다시 말했어. 그러나 앨빈의 손을 놓지는 않았어. 오히려 깍지를 끼어오는 손. 말과 행동의 불일치에 앨빈은 혼란스러웠어.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어. 그러나 자신의 손을 꽉 잡아오는 리바이의 손길만은 확실한 것이었어. 이 모든 불확실의 감정들과, 말들과, 눈빛들 사이에서. 그것 하나만은 확실했어. 앨빈씨는 안 무섭습니까. 하고 리바이가 물었어. 앨빈은 여전히 미친듯이 액셀을 밟고 있었어. 신호를 몇갠가 어긴것 같긴 했지만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았어. 앨빈은 리바이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어. 그제서야 뭔가 알것 같았어. 리바이에게는 공포와 사랑이, 공포와 욕구가 한가지라는 것을. 그것들이 엉키고 설켜 리바이를 이루고 있음을. 무섭다고 하는 것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늘 어렴풋하게만 알고있던, 리바이가 그저 몸을 사린다고만 생각하면서도 어딘지 찜찜하던 그 추측에 답이 내려지는 순간이었어. 무섭냐고? 하고 앨빈이 속으로 생각했어. 차선을 바꾸며 그는 기어를 바꿔넣었어. 아까처럼 속도를 낼수가 없었어. 신호등에 걸리려는지 차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지. 그러나 멈춰설듯, 멈춰설듯, 차는 앞으로 전진했어. 한번 신호를 받았더니 계속 받고 있었지. 무섭냐고? 하고 앨빈이 속으로 다시한번 생각했어. 무서웠어. 리바이가 무서웠어. 무서워하는 리바이를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었어. 무섭다고 말하는 당신이 무서워. 하고 생각하며 앨빈이 리바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어. 그러자 믿을 수 없게도, 리바이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번지는 게 보였어. 무섭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 미소는 더 짙어졌어. 그저 기쁜 미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웃음도 아닌. 오만가지 감정이 다 담긴 미소였어. 동질감. 자신만 무서워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에 대한 확신. 내가 두려운만큼, 불확실한 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당신도 조금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완벽한 확신보다 더 리바이를 안심시키는 것이었어. 그 견고함이 늘 경이로웠으면서도 또 그것에 초조해지는 것도 사실이었어. 자신이 너무 느린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할것 같아서. 그래서 같아지고 싶었어. 자신만 무서워하고 있으면 어딘가 바보가 된 기분일 것 같았어. 결코 쉽지 않을 남자끼리의 관계에 있어서, 앨빈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걸 보며 늘 위화감을 느꼈지. 그러나 지금 앨빈은 무섭다고 하고 있었어. 자신과 이루어지는것이 무섭다고. 둘은 서로의 공포에서 마음을 읽었어. 불안으로 증명되는 마음. 앨빈이 리바이의 손을 떨쳐낸 후 이번엔 자신이 리바이의 손을 꽉 잡았어. 위아래가 바뀌어도 서로 겹치고 있는 것은 똑같았어. 당신이 무섭습니다. 하고 앨빈이 이어서 말했어. 무서워하고 있는 당신이 무서워요. 하는 말이 리바이의 가슴 속으로 가득히 스몄어. 서로가 무섭고 두려웠어. 그러나 놓을 수가 없었어. 그것이 벅차서 리바이는 계속 웃었어. 그러나 앨빈의 표정은 곧이라도 울것처럼 일그러졌어. 전혀 다른 표정이었지만 본질은 같은 것이었어. 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을때, 그것의 표현이 울음인지 웃음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지. 서로가 너무나 기꺼워서 그저 꽃바람 봄바람 하는 것보다 무서워하면서도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 더 크게 다가왔어. 마치 진짜인 것 같았어. 뭐가 진짜인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 이건 진짜야. 하는 생각. 순간의 착각일지라도 좋았어. 아니, 착각일지라 하더라도 착각이 아니게 만들고 싶었어. 그것이 다름아닌 둘에게 달린 일이라는 걸 둘은 이 순간 깨달았어. 리바이는 입을 다물고 다시 앞을 바라봤어. 천천히 가라든가, 더 빨리 가라든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어. 머릿속에서 태풍이 치는 것 같았어. 그저 하잘것 없는 연애, 모두가 소비자인, 그리하여 연애마저도 소비되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이 마음은 그저 감정의 소비로만 남을 것 같지 않았어. 그것이 느껴졌어.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그 생각을 하는 둘은 여전히 손을 꽉 붙잡고 있었어. 축축한 습기가 느껴졌지만 둘 다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 집으로 가는 길이 여전히 길게만 느껴졌어. 아침의 햇살마저도 뜨겁기 때문에 늘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곤 하는 앨빈이었지만 오늘은 달랐어. 비어있는 지상주차장 아무데나 그는 마구 주차를 했어. 다음날을 생각해서 거꾸로 주차하지도 않고 그저 차 머리부터 들이박았지. 황급히 주차를 멈추고 나서 앨빈은 리바이를 바라봤어. 리바이가 앨빈을 바라보며 차 문을 여는게 보였어.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에서 내렸어. 단지를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가 엘레베이터 앞에 서자 엿같게도 엘레베이터는 20층에 있었어. 버튼을 마구 누르는 앨빈의 손길이 거칠었어. 엘레베이터는 한번의 막힘도 없이 내려왔지만 결코 빠르게 느껴지지는 않았어. 곁에 서있는 리바이의 존재감이 무섭도록 확연하게 느껴졌어. 마치 자신의 옆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리바이의 호흡 하나, 행동 하나가 다 느껴졌어. 이윽고 엘레베이터에 타서 앨빈은 15층을 눌렀어. 닫힘버튼을 마구 누르자 문이 열리자마자 스르륵 닫혔어. 고요한 엘레베이터 안에서 둘은 서로의 숨소리만 듣고 있었어. 현관앞에 도착해서 앨빈은 비밀번호를 눌렀어.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리바이를 마구 밀어넣다시피 집어넣었지. 들어서자마자 둘은 입을 맞댔어. 이가 부딪힐만큼 격한 키스여서 리바이가 미간을 좀 찌푸렸어. 앨빈은 리바이의 허리를 확 끌어안았어. 늘 이렇게 하고 싶었어. 그러면 리바이가 자신을 밀어낼듯 어깨를 잡아오길 바랐지. 그래, 이렇게. 하고 앨빈은 생각했어. 대번에 자신의 어깨를 꽉 잡는 리바이의 손길이 단단해서 앨빈은 가슴이 떨렸어. 더 깊이 끌어안고 싶었어. 더 깊이 키스하고 싶었어. 이미 더이상 할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키스를 하고 또 해도, 리바이의 허리가 반대로 꺾일 지경으로 붙잡고 있어도 부족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먹어버리고 싶었어. 거의 식욕에 가까운 성욕이 치받았어. 앨빈은 끓는듯한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리바이를 먹어삼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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