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에서 성매매 업소가 단속될 때마다 용의자 중에 한국사람 이름이 거의 예외없이 들어있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죄를 짓고 당사자 혼자 죄 값을 치르고 끝나는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다민족으로 구성된 이곳에서 성매매 죄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그 수치를 같이 느껴야한다. 그 점에서 괘씸죄까지 적용된다.
사람이 잘못을 할 때 한 두 번이면 실수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렇게 반복하게 되는 정신상태가 의심되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 뿌리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이 되는 한국인의 성매매 범죄. 단지 특정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제대로 진단이 안 된 사회문제가 계속적으로 터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불쌍한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가 이슈가 되면서 소녀상을 만들고 인권운운하며 일본에 항의하는데 한쪽에서는 성매매 관련 기사가 뜨면 정말 낯이 뜨거워진다.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양쪽 사건에 등장하는 중개인은 틀림없이 두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제 시대 때나 오늘날의 미국에서나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는 사고방식으로 여자를 자기의 어머니와 같은 한 여성이 아니고 단지 상품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게 따지기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의해 인생이 짓밟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누구의 꼬임에 빠져서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다루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인으로 볼 때 과거 일본 군인이면 지금 누군가의 아버지요, 살아있는 혹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일 텐데 일본이 그것을 인정하려들지 않는 것만큼이나 혹시 한국인들이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 같은 맥락의 행위가 아닐까.
위안부 문제와 관련, 한국인이 중개인이었다면 일본으로서는 당연히 돈을 주고 산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저렇게까지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산 것도 나쁘지만 자기 민족을 팔아넘긴 것은 더 용서의 가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그 진범이 누군지 찾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012년 겨울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갱단의 강간으로 소녀가 죽은 사건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후 그의 첫 번째 독립기념 연설 중에 강간과 성범죄로 얼룩진 그 나라의 부모들에게 딸만 질책하지 말라고 했다. 강간을 한 그 자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라면서 그 아들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모가 통감하고 ‘이제 우리의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자’고 하였다.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다. 자숙하는 마음과 사회의 비판이 없이 어떻게 이러한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인정하겠는가? 오늘의 성매매 사건도 어쩌다 누군가가 저지른 사건이라고 덮을 것인가?
<강화인/ 대학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