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12층 기자회견장에서 일본 정부가 지자체들에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하도록 종용하는 ‘통지’를 내려보낸 데 대해 조선학교 관계자들이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대부분 이 회견을 보도하지 않았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오늘 부 활동(방과 후 활동)도 빼먹고 여기에 왔습니다. 일본 학생들이었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30일 오후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앞. 반듯하게 교복을 차려 입은 두 명의 고등학생이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이들은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일본 내 지자체들에게 문부과학성이 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통지’를 내려 보낸 것에 대한 항의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너무 분해서, 실망스러워서, 분노가 넘쳐흘렀습니다. 자신의 말과 문화, 역사를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웃는 그런 당연한 학교생활을 모두 부정당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본 사회에 나쁜 짓을 했습니까. 조선인으로 태어나 조선인답게 살라고 아버지·어머니께서 조선학교에 보내주었는데 왜 우리만 이런 차별을 받아야 합니까.”
일본 정부의 눈엣가시 취급을 받는 조선학교의 역사는 1945년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오른다. 귀국을 포기한 재일동포들이 자식들에게 조국의 말과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게 조선학교였다. 조선학교의 학생 수는 최전성기인 1960년엔 4만6294명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크게 줄어 68개교 6000여명에 머문다. 학생들의 50~60%는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다.
지자체 보조금을 둘러싼 이번 갈등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북-일간 최대 외교 현안인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자민당이 문부성에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지자체들의 활동을 중단시킬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요청을 받아들여 하세 히로시 문부상은 결국 “일본 정부는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총련이 (조선학교의) 교육 내용 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각 지자체에 적절한 대응을 주문하는 ‘통지’를 내려 보낸다. 2010~2011년 도쿄와 오사카 등 주요 대도시가 보조금을 중단한 뒤에도 꾸준히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일본 내 일부 지자체(총액 3억7000만엔)에게도 지급 중단 압력을 가한 셈이다.
일본 정부는 유엔(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여러 국제인권단체로부터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시정 권고를 받고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입장이다 보니, 일본 사회의 헤이트 스피치(인종 차별집회)도 대부분 조선학교를 표적으로 해서 열린다. 정부가 민간의 인종 차별을 사실상 조장하는 셈이다. 보조금이 끊긴 학교들에선 교사들의 월급이 밀리는 등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원이 줄면서 학부모들의 비용 부담도 늘어 학생 한 명당 매달 3만5000엔(약 35만원)의 월사금을 내야 한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처에 대해선 일본 언론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마이니치신문>은 31일 사설에서 “(북한에 대한) 무거운 제재 조처 등 외교상 압력은 당연하지만, 그것과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장을 옥죄는 건 별개의 일이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 일본 정부가 정책을 재고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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