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20분께 학생들과 탑승객들이 구조되고 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15만장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전남도청 수산자원과 제공
참사 뒤 한 아버지와 만남 계기
3TB 기록 열 달 만에 책으로 엮어
침몰까지 101분 상황 1분씩 복원
3TB 기록 열 달 만에 책으로 엮어
침몰까지 101분 상황 1분씩 복원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진실의힘·2만5000원 한 아버지가 있었다. 2014년 4월16일 아들을 잃은 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들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두툼한 수사·재판 기록 더미를 한 장씩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훔치며 읽어 나갔다. 아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찍어 남긴, 침몰하는 세월호 내부를 담은 15분짜리 동영상을 필생의 ‘숙제’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국가가 왜 아들을 구하지 못했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몰두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단원고 2학년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독재정권 아래서 간첩으로 몰렸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이들이 만든 단체 ‘진실의 힘’이 박씨에게 힘을 보탰다. 박다영·박수빈 변호사, 박현진씨 등이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명감으로 15만쪽, 3테라바이트(TB)에 이르는 기록에 열 달 동안 매달렸다. ■ ‘배가 너무 기울었어요. 보고싶어요ㅠㅠ’ 세월호 선원들과 해양경찰,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에 대한 재판기록 등에 근거한 이 책은 2281개 각주가 달린, 오롯이 ‘팩트’로만 이뤄졌다.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는 세월호 참사의 전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몰입하도록 이끈다. 4월15일 오후 세월호가 출항 대기를 하던 시점부터 이튿날 오전 10시30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기까지를 기록한 제1부는 학생들이 남긴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기록들을 그대로 인용해 학생들의 설렘과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엄습해오는 불안감까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특히 배가 기울기 시작해 침몰하기까지의 101분은 생존자들의 수사기록과 탑승자들이 찍은 동영상, 해양경찰의 교신기록 등이 총망라돼 거의 1분 단위로 재현돼 있다. 이렇게 파편으로 존재하던 자료를 한데 묶은 기록은 해경의 구조 실패에 대한 진상규명에 중요한 밑돌이 된다. ‘퇴선명령’ 대신 도주를 택한 선원들, 그런 선원들을 배에 태우고도 제대로 된 구조에 나서지 않았던 해경의 모습에선 새삼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들게 된다. 그 상황에서도 학생들과 일반인 탑승객들은 “애기부터요, 애기”라고 소리치며 5살 아기를 먼저 구하려 애쓰고 있다. ■ 왜 못 구했나 제1부가 시간순으로 정리돼 있다면, 제2부 ‘왜 못 구했나’, 제3부 ‘왜 침몰했나’, 제4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 어떻게 태어났나’는 구조 실패, 세월호 침몰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함께 참사의 가장 근본적 원인인 과적과 무리한 구조변경 등 선사의 ‘탐욕’을 다루고 있다. 특히 현장 영상과 사진을 보내라는 청와대의 집요한 요구에 해경 123정이 찍어 보낸 사진도 최초로 공개됐다. 구조 실패를 숨기기 위해 해경이 했던 녹취록 ‘조작’도 짚었다. 지은이들이 내린 결론은 ‘구할 수 있었다’(5부)는 것이다. 선원들이 정해진 임무대로 퇴선명령을 했다면, 해경이 철저한 구조계획에 따라 책임 있게 행동했다면, 사고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인근 선박들이 해경과 합세했다면 구조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변의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만 실현됐을 일이긴 하지만, 많은 시민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구할 수 있었고 선원과 해경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막연한 추론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한발짝 더 다가선 진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기시감’과의 싸움이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를 거치면서 이미 “진상이 규명됐다”는 주장도 많았다. 그러나 이 700쪽짜리 책에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내용이 많이 나온다. 예컨대 수사·재판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세월호의 마지막 교신기록을 바탕으로 도주한 선원들에게 ‘살인죄’를 물었어야 하고, 한 시간여에 걸쳐 최소 12차례 ‘가만히 있으라’고 선내방송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철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이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관계자는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각주에도 출처를 표시했고, 과제들을 정리해줘 조사관들이 조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책의 탄생에 마중물이 됐던 박종대씨는 이 책에 대해 “검찰 수사의 미진한 부분들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해 진상규명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책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