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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노트]기차대란

임종금 기자 lim1498@idomin.com 2016년 03월 28일 월요일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았다. 우리 민족을 통치하던 일본인은 자리를 떠났다. 철도와 열차를 운영하던 일본인이 사라지면서 조선인이 그 자리를 맡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이 땅을 떠났다. 철도청에 있던 조선인들은 일본인의 말단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그들은 철도를 운영·유지·관리하는 그 어떤 노하우를 배울 기회도 없었다. 그 결과 해방 직후부터 1946년 말까지 거의 매일 기차 사고가 일어났다. 미군정의 엄격한 통제로 언론에 보도되는 건 그 가운데 극소수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사고는 노선 조정에 실패해 기차 간 정면 충돌 사고였다. 1945년 9월 영등포역에서 통근기차 2대가 정면 충돌했다.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수백 명이 죽었다고 한다. 영등포역에서는 이듬해 11월에도 작업 중인 전동차와 기차가 정면 충돌해 화재로 42명이 죽었다. 대구역에서도 1945년 기차 정면 충돌 사고로 기관차가 반대편 객차 4개를 타고 올라갔다. 역시 수백 명이 죽었다. 1946년에도 대구역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굴을 통과하다 굴 속 매연에 승객들이 질식돼 죽고, 부실정비로 기차가 탈선하는 등 해방 직후 한반도는 그야말로 '기차 대란'이었다. 최소 수천 명이 이 '기차 대란'에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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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일어난 '기차 대란'은 일제가 만든 근대시설은 조선의 근대화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근대시설은 수탈의 도구이며, 조선인들의 존재 이유는 그저 일제가 필요로 하는 말단만 채워주면 그만이었다. 일제의 식민지배로 근대화가 이뤄졌다고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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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금 기자

    • 임종금 기자
  • 뉴스펀딩 기사 '광복 70년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기사 새로쓰기'를 기획하고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