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아이들, 수용자 자녀] (상) 숨어 사는 또다른 피해자
“조사할 법률 근거 없어” 해명만
전문가들 수용자 자녀 6만 추정
무단결석·약물중독 등 위기 노출
정부, 국가통계시스템 구축해야
“조사할 법률 근거 없어” 해명만
전문가들 수용자 자녀 6만 추정
무단결석·약물중독 등 위기 노출
정부, 국가통계시스템 구축해야
‘수용자 자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 차원의 실태 파악은 사실상 전무하다. 구체적인 현황 파악조차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부 차원의 수용자 자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기결·미결수를 관리하는 법무부는 “형이 확정된 수용자의 미성년 자녀 수치는 개인 신상에 관한 사항으로 정확한 집계 파악이 어렵다”고 밝혔다. ‘자녀 조사를 할 만한 법률 근거가 없다’는 해명이지만 이제껏 이와 관련한 입법 시도조차 없었다. 법무부가 연방·주립 교도소의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전국 수준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통계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지난해 각 교정기관에서 파악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불우수형자 자녀’ 220명에게 법무부 소관, 관련 비영리 민간단체 등과 협력해 경제적 지원과 멘토링, 학습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지원”한 게 고작이다.
수용자 자녀 지원단체와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범죄 등으로 인해 부모가 부재한 상태로 자라고 있는 아이가 6만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치는 말 그대로 ‘추정치’일 뿐이다. 대검찰청 범죄백서를 보면, 매해 교정시설에 입소하는 인원은 10만명 수준이다. 일부 교정시설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2007년 조사에서는 전체 수용자의 60%가 ‘최소 1명 이상의 미성년 자녀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러한 연구를 참고해볼 때 매해 6만명 정도의 수용자 자녀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미성년 인구 100명당 0.5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해 수용자 가족 지원단체 ‘기독교세진회’ 의뢰로 신연희 성결대 교수(사회복지학)가 서울 성동구치소 미결수용자의 자녀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05명 중 자녀가 있는 수용자의 비율은 31.2%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자녀 수는 1.54명이며, 전체 자녀 수는 479명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수용자 자녀를 파악하는 국가통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연희 교수와 박선영 한세대 교수(경찰행정학)가 2012년 발표한 ‘수용자 자녀 문제에 관한 미국과 영국의 사례 분석과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 논문은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자라는 수용자의 자녀들이 그렇지 않은 아동·청소년에 비해 학문적 성취도가 낮고, 무단결석이나 약물중독, 정신적 질병 등 부정적인 경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비행·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인구 규모 측면에서 수용자 자녀의 수가 적지 않은데다, 부모의 보호 없이 지내는 과정에서 복합적인 위기에 노출되는데도 수용자의 자녀 문제는 정책 어젠다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취약계층 지원제도는 저소득 빈곤이 급여 대상자 선정의 기준임에 따라, 수용자 자녀들의 독특한 문제에 대한 개입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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