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왜조」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舊百餘國, 漢時有朝見者, 今使譯所通三十國(예로부터 백여 개의 나라가 있어, 한 때에는 알현하는 자가 있었다. 이제 그 역관이 통하는 곳이 30국이다.)’
풀이하자면, 왜의 언어는 여러갈래였고, 그중 중국(魏)이 통역을 통해 소통을 할수 있는 나라가 30국이었으며, 통역을 써도 이해가 불가능한 언어가 많았다는 얘기다. 고대 일본에선 만주나 한반도에서보다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고구려어가 일본어와 공통어휘를 가졌다는 점이다. 고구려어로 골짜기(谷)를 의미하는 ‘旦(단)’·‘呑(탄)’·‘頓(돈)’은 고대일본어 ‘tari(谷)’과 유사하다. 고구려어로 토끼(兎)를 뜻하는 ‘오ᄉᆞ함(烏斯含)’은 고대일본어로 ‘usagi’와 비슷하다.
숫자를 세는 언어에서 더 유사성을 띤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추출한 고구려어 가운데, 3은 ‘밀(密)’, 5는 ‘우차(于次)’, 7은 ‘난은(難隱)’, 10은 ‘덕(德)’이다. 고대 일본어에서 3은 ‘mi’, 5는 ‘itu’, 7은 ‘nana’, 10은 ‘töwo’다. 이기문 교수에 따르면 특히 7은 퉁구스어 ‘nadan’에서 나온 것으로, 일본어에서 d가 n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7을 의미하는 단어에 ‘難隱(난은)’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일본어에선 ‘nana’가 통용되고 있다.
이기문 교수의 결론을 따르면 고구려어는 알타이계 언어로 중세국어를 거쳐 오늘날 한국어에 많은 어휘를 남겼으며, 특히 일본어에 그 영향이 컸다고 보여진다.
김용운 교수(단국대)는 수학자로서 한일문화 비교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 수사(數詞)의 40%가 고구려어에서 나왔음을 밝혀냈다. 그는 숫자를 세는 단어는 생활기초어이므로 쉽게 바뀌지 않으며, 과거의 흔적이 가장 오래 남아있는 어휘라고 주장했다. 고대 일본의 산학(算學)이 백제에서 전해졌으며, 오늘의 일본 수사(數詞)로 남아있다는 것.
오늘날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みつ(3), いつつ(5), なな(7), とお(10)라는 어휘가 고구려어에서 나왔음은 일본 학자들도 알고 있다. 일본 교토대 나이토 코난(內藤湖南) 교수, 도쿄대의 신무라 이즈루(新村出) 교수등이 일제시대인 1916년에 삼국사기 지리지를 이용해 한일간에 3, 5, 7, 10이 대응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김용운 교수는 신라어와 백제어가 분명히 다르며, 일본어에는 백제어가, 한국어에는 신라어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구려와 백제의 지배계급이 같았으므로, 두나라의 말도 같았고( 梁書·629년 편찬), 일본어에 남아 있는 고구려어는 백제인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동차를 뜻하는 구루마(くるま)도 ‘구르다’와 ‘말(馬)’의 합성어, 즉 ‘구르는 말’이라는 뜻으로, 고대 한국어에서 기원한 어휘라고 한다.
일본 비교언어학자인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구마모토대)씨와 박명미 교수(시모노세키대)교수가 공동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외래어를 뺀 순수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근이 거의 같다고 판명했다. 두 연구자들은 일본어의 모어(母語)가 한국어이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기초어휘 5000개의 어근(語根)이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 헤이안(平安)시대(794~1185년)에 편찬된 『신선성씨록』(新選姓氏錄·815년 편찬)이라는 책에 중앙정부에 일정한 정치적 자격을 가지고 있는 성씨 가운데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의 비율이 전체 1059성(姓) 가운데 324성으로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즉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일본 고대문화를 만들었고, 그들의 언어가 일본어의 모태가 됐다는 것이다.
김인영 inkim2316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