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설.칼럼칼럼

[시론] ‘위안부 합의’라는 국제적 일탈행위 / 이윤제

등록 :2016-01-11 18:36

크게 작게

구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고 대학에서 국제형사법을 강의하는 필자가 보기에 최근 한·일 정부의 위안부 관련 합의 내용이 ‘국제범죄’라는 측면을 배제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독일, 일본은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관한 로마규정’ 가입국이다. 세 나라 모두 죄형법정주의를 형법의 원칙으로 삼고 있기에 로마규정을 이행할 국내법을 제정해야 했다. 독일, 일본이 2차대전의 가해자인 점을 고려하면 로마규정의 이행입법에서 같은 입장을 취하고, 한국은 이와 다른 태도를 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과 독일이 국제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자세한 특별형법을 제정했다. 반면 일본은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협력법을 제정했으나, 국제범죄를 처벌하는 이행입법은 하지 않았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협력법에는 국제범죄의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성노예, 강제노동, 국가원수의 면책 부정, 지휘관 책임과 같이 과거의 국제범죄, 특히 일본이 성역시하는 일왕의 형사책임에 관한 논의가 실체법의 입법 과정을 통해 논의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로마규정에는 국제범죄에 책임이 있는 자는 국가수반이라도 면책이 되지 않는다는 뉘른베르크 원칙과 국가원수도 부하들의 범죄에 대하여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지휘관 책임이 규정되어 있다. 입법에서도 일본은 독일과 달리 과거를 회피한 것이다.

한·일 양국의 발표문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말은 양쪽 정부가 합의한 내용을 벗어나는 어떠한 적극적 행동도 앞으로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발표문 내용이 주로 국가 책임에 관한 것임을 고려할 때, 이것은 국가 책임과는 다른 형태의 국제법상 책임, 즉 국제범죄에 대한 개인의 형사책임을 추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제형사법은 국가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범죄를 저지른 개인에 대한 형사책임을 다룬다. 유엔 인권(소)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들도 위안부와 관련된 범죄자들의 처벌을 제안한 바 있다. 이제 양국 정부는 국제형사법적 접근에 대한 그동안의 무관심을 넘어, 앞으로는 아예 이에 관한 정부 차원의 논의조차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공식적으로 한 셈이다. 국가형벌권의 발동은 정부의 의사에 달려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국제형사법적 접근을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포기한다면 일본은 유엔이나 인권기구에서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범죄라고 주장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

국제범죄는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남기고 이것은 피해자의 나이, 성, 취약성에 의해 더 악화된다. 국가가 정의의 집행을 거부하고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 심해진다. 약 20만명의 한국 여성이 성노예가 되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이 중 소수만이 살아 돌아왔다. 형사처벌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형벌권의 포기를 정부가 단독으로 협상할 사안이 아니다.

이윤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형벌권은 주권의 가장 대표적인 작용이다. 헌법은 이런 중요한 사안에 대한 국가 간의 협약은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즉, 한·일 협상은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헌법 60조 1항)의 침해이다. 또한 국제형사법은 개별 국가가 국제범죄에 대한 처벌을 포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제범죄에 대한 형사책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으며, 사면될 수 없다. 따라서 국제법적으로는 국제형사법 위반이 된다.

이윤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광고

광고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과학
오피니언
만화 | esc | 토요판 | 뉴스그래픽 | 퀴즈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헤리리뷰 | 사람 | 탐사보도
스페셜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커뮤니티
매거진
사업
독자프리미엄서비스 | 고객센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