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말레이시아,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오카모토사가 불매 운동 대상이 된 이유에는 이 회사의 연혁과 관계 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강정숙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제도와 기업의 역할’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오카모토사는 1936년 자본금 10만엔으로 출발한 국제고무공업 주식회사를 모태로 한다. 이 회사는 전쟁과 국가의 통제 속에서 수혜를 받으며 9년만인 1945년 2월 자본을 120만엔으로 증자한다.
오카모토가 태평양 전쟁 당시 위안부에 공급했던 삿쿠(오른쪽) |
일본 콘돔 회사인 오카모토 주식회사는 일제 강점기 시절 군수용품으로 삿쿠(콘돔)를 생산했다. 이들이 생산한 삿쿠는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들에게 지급되었다.
1941년 태평양전쟁 개전을 앞두고 일본군이 군수 물자를 조달하는 수품창을 발족하자 인척관계를 활용해 군부와 결탁했다.
군부와 결탁해 독점으로 콘돔을 공급했던 오카모토사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벌어들일 수 있었고 이 당시 마련한 자금은 이후 지속적인 R&D투자로 이어져 오늘날의 기술력을 갖추는데 기반이 되었다.
또한 당시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들 중에는 한국인, 중국인 등 동아시아 여성 뿐만 아니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네덜란드 등 백인여성들도 있었다. 이들에게서 추출한 다양한 데이터 또한 그들의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국제고무공업은 오카모토 고무공업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 후 50년대 한국전쟁과 60년대 베트남 전쟁을 통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1968년 니혼니켄 고무 등의 회사와 합병하며 오카모토 리켄 고무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1985년 오늘날의 오카모토 주식회사가 된다.
아시아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들었던 일본, 비인도적 목적으로 사용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군수용 콘돔을 적극 생산, 이윤을 증식했던 오카모토 주식회사.
위안부를 동원했던 일본 정부 뿐 아니라 군수용품 생산기업들 역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오카모토사와 위안부의 관계를 꼬집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한 네티즌이 올린 ‘오카모토사와 위안부’라는 글이 공유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다음 아고라 등의 공간을 통해 오카모토 불매운동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카모토사의 제품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초박형 콘돔인 ‘스킨 레스’, ‘0.03’ 등을 판매하며 국내 콘돔 판매량의 1, 2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시장 점유율 약 28.5%로 업계 2위를 달리고 있다.
glfh2002@heraldcorp.com
[영상=일본 콘돔 회사인 오카모토 주식회사는 일제 강점기 시절 군수용품으로 삿쿠(콘돔)를 생산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강정숙 교수의 논문 ‘일본군 위안부제도와 기업의 역할’을 기반으로 만든 짧은 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