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외교

박 대통령, 빌리 브란트의 이 사진을 보라!

등록 :2015-12-29 19:40수정 :2015-12-30 20:31

크게 작게

일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가 29일 오후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회담 합의안을 설명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정부의 일방적인 회담 진행과 결과 발표를 따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일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가 29일 오후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회담 합의안을 설명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정부의 일방적인 회담 진행과 결과 발표를 따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현장에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역사에 종지부는 없다”

# 1970년 12월7일 아침 7시 폴란드 바르샤바 자멘호파 거리의 유대인 위령탑. 초겨울 비가 눈물처럼 위령탑을 적셨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그 앞에 섰다. 1943년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이 나치에 맞서 28일간 봉기했다가 5만6000여명이 참살당한 일을 기리는 탑이다. 잠시 고개를 숙인 브란트가 뒤로 물러섰다. 의례적 참배가 끝났다고 여긴 일부 기자들도 따라 몸을 뺐다. 그때 브란트가 위령탑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듯이 터졌다. 브란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독이 폴란드와 관계정상화를 위한 바르샤바조약을 맺는 날 아침, 브란트는 나치 독일의 잘못을 온몸으로 사죄한 것이다.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수상은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브란트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그는 말했다.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Forgivable, but Unforgettable)” 그 뒤 폴란드인은 바르샤바에 브란트 광장을 만들어,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모습을 담은 기념비를 세웠다. 사죄와 용서와 화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독일, 영원한 반성 다짐처럼
역사는 쉼없는 성찰의 대상이지
한번의 립서비스로 끝날 일 아냐
소녀상 이전 수용도 ‘섣부른 판단’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손에 잔혹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손에 잔혹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2015년 5월3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초의 나치 집단수용소인 독일 바이에른주 다하우 수용소를 찾았다. 이날도 비가 흩뿌렸다. 메르켈 총리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우리는 희생자들과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이를 기억하겠다.” 그는 전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에 맞춰 공개한 영상메시지에서 “역사에 종지부는 없다”고 선언한 터였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월26일 베를린 연설에선 “나치의 만행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다짐했다.

반세기 전 브란트 총리가 이미 사죄하고 ‘용서’를 받았지만, 독일은 사죄와 반성을 멈추지 않는다. 유대인들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멈추지 않는다. 역사의 성찰과 반성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역사란 쉼없는 성찰의 대상이지, 핵무기처럼 불가역적 폐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그 직후 아베 총리는 총리관저 기자회견에서 ‘사죄’와 ‘반성’은 입에 올리지 않은 채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기시다 후미오 외상한테 지시한 터였다.(29일 <요미우리신문>) 기시다 외상은 일본 기자들한테 “(일본 정부 예산 출연은) 배상이 아니다. 도의적 책임이라는 데 변함이 없다. (이번 협상에서 일본 쪽이) 잃은 것이라고 하면 10억엔일 게다. 예산으로 내는 거니”라고 말했다.

일본 쪽의 관심사는 법적 책임 인정이나 사죄, 반성이 아니다. 그저 ‘10억엔과 립서비스를 대가로 다시는 한국이 이 문제를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협상 타결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고,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안”이라고 자찬했다. 이번 합의를 최종 결정한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를 들어 ‘피해자분들과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합의’를 입이 닳도록 강조해온 박근혜 정부가 “(발표 내용을) 전부 무시하겠다”(이용수), “이렇게 고생하고 기다렸는데…우리는 돈보다 명예를 회복받아야 한다”(이옥선)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절규에 뭐라 답할지 궁금하다. 국제 인권법·규범에 따르면, 가해국과 피해국 정부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그 피해에 대해 합의할 수 없다.

이제훈 기자
이제훈 기자
박근혜 정부의 먼지처럼 경박한 역사인식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이전하라는 아베 정부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데서도 드러난다. 정부 관계자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곁가지, 부수적 사안”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평화의 소녀상’은 “(1210회에 이른) 수요시위의 정신을 기리는 산역사의 상징물”(정대협 성명)이자 역사를 성찰하는 세계시민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역사의 증언자다. 결코 곁가지가 아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광고

광고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과학
오피니언
만화 | esc | 토요판 | 뉴스그래픽 | 퀴즈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헤리리뷰 | 사람 | 탐사보도
스페셜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커뮤니티
매거진
사업
독자프리미엄서비스 | 고객센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