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12에서 일본 대표팀 에이스로 활양한 오타니 쇼헤이(사진 오른쪽)(사진=WBSC)
J. R. R. 톨킨이 ‘반지의 제왕’이란 소설을 통해 창조한 신세계처럼 ‘프리미어 12’에서 맹활약한 일본 투수 오타니 쇼헤이는 미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겐 또 하나의 신세계였다.
프리미어 12 대회 기간 일본과 타이완을 오가며 일본 대표팀을 지켜본 모 빅리그 스카우트는 “프리미어 12에서 오타니는 투수 이상의 존재였다”며 “대회 내내 오타니 투구를 지켜본 수많은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가 이구동성으로 ‘저런 투수는 처음 본다’며 무척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프리미어 12에서 오타니가 등판하는 날이면 MLB 스카우트들은 양손에 스피드건과 캠코더를 들고서 구장을 찾았다. 그들은 오타니의 투구 하나하나를 면밀히 체크했는데 경기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오타니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이 스카우트는 “빅리그 스카우트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는 ‘지금 오타니 실력이면 MLB FA 시장에서도 탑클래스’라는 것이었다”며 “만약 오타니가 미국 진출을 선언하면 다나카 마사히로가 뉴욕 양키스와 맺은 7년 1억7천550만 달러를 뛰어넘는 2억 달러 계약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고 전했다.
오타니, 다르빗슈와 다나카보다 더 빨리 MLB 진출하나
이 스카우트가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말은 이것이었다.
“다르빗슈 유와 다나카가 NPB(일본야구기구)에서 뛸 때도 많은 MLB 스카우트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관심이 직접적인 영입 전쟁으로 이어진 건 두 선수가 프로 경력 5년 차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차피 7시즌 정도까지 일본에서 뛰어야 포스팅 자격이 주어진다는 걸 다들 알았기에 서둘러 영입 전쟁에 뛰어든 빅리그 스카우트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타니는 다르다. 이제 프로 경력 3년 차밖에 안 된 선수인데도 많은 빅리그 스카우트가 벌써부터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우리도 계속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다르빗슈와 다나카는 정확히 일본에서 7시즌을 마치고 포스팅을 통해 미국 무대로 진출했다. 두 선수의 전례를 고려한다면 오타니는 미국 진출을 위해 앞으로도 4시즌가량을 더 뛰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빅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은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줄 만 하다. 그러나 일본야구계와 몇몇 빅리그 스카우트는 ‘오타니와 소속팀 니혼햄 파이터스간에 모종의 약속이 돼 있다’며 ‘그 약속만 니혼햄에서 지킨다면 오타니의 미국행은 더 빨리 실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야구계와 몇몇 빅리그 스카우트가 말하는 모종의 약속은 ‘오타니가 니혼햄에서 5시즌을 뛰었을 시 오타니의 미국 진출을 니혼햄에서 막지 않겠다’는 양자간의 밀약을 뜻한다. 일본 프로야구를 잘 아는 빅리그 스카우트는 “2012년 니혼햄이 오타니 입단을 성사시키면서 ‘입단 후 5시즌을 뛸 시 5시즌이 끝나는 해 포스팅을 통한 미국 진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안다”며 “이 소문이 빅리그 스카우트 사이에 퍼지면서 오타니 영입전이 조기에 벌어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시계를 돌려 2012년으로 잠시 돌아가면. 당시 고3이던 오타니는 일찌감치 MLB 진출을 선언했다. 얼마나 미국 진출 의사가 강했는지 오타니는 자신을 영입하고 싶어 하던 NPB 구단을 향해 “지명권을 낭비할 수 있으니 날 지명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해 10월. 니혼햄 파이터스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타니를 1순위로 지명하고 말았다. 당시 니혼햄은 “오타니에겐 정말 미안하다”며 사과했는데 오타니는 “날 고평가해준 건 고맙지만, 미국 무대로 진출하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다”는 말로 니혼햄 입단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니혼햄의 끈질긴 구애가 이어지며 오타니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 니혼햄은 고교 졸업 후 미국 무대로 진출했던 한국 아마추어 선수들의 실패담을 들려주며 “NPB리그에서 실력을 키운 뒤 미국 진출을 하는 게 훨씬 더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오타니를 설득했다. 결국 설득은 주효했다.
오타니는 미국 진출의 꿈을 뒤로 미루고 니혼햄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야구계와 몇몇 빅리그 스카우트 사이에서 정설처럼 퍼져 있는 ‘NPB 5년 활약 시 미국 진출’이란 소문도 니혼햄이 오타니를 붙잡기 위한 필사의 카드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오타니는 니혼햄에서 5시즌을 뛴 2017년 가을 포스팅에 도전할 수 있다.
무상(?)으로 전지훈련장을 내준 샌디에이고
니혼햄의 전지훈련장으로 활용됐던 오키나와 나고 시영구장(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MLB 스카우트들의 오타니 쟁탈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최근 기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바로 니혼햄이 내년 1차 스프링캠프를 미국 애리조나에서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올해까지 니혼햄은 오키나와 나고 시영구장을 전지훈련장으로 활용했다. 다르빗슈, 오타니 등 유명 스타들이 소속된 팀인 만큼 나고 시영구장엔 많은 니혼햄 팬이 찾았다. 오키나와 북쪽에 자리 잡은 나고 시영구장 주변은 덕분에 짭짤한 경제 특수를 맛봤다.
문제는 1977년 개장한 나고 시영구장이 너무 노후화돼 선수들이 부상 위험을 안고 뛰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니혼햄은 10년 전부터 나고시에 전체적인 보수공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나고시는 “알았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주저했고, 니혼햄은 결국 전지훈련지 이전을 계획하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고시는 그제야 시영구장의 전체적인 개보수 공사를 약속했다. 특히나 나고시는 “오타니를 보러 온 팬들을 위해 구장 전광판에 구속 표시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땐 니혼햄의 마음이 이미 뜬 뒤였다. 니혼햄은 “2016년 1차 스프링캠프를 미국 애리조나에서 진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장소는 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전지훈련장.
10월 하순 일본에서 만난 니혼햄 관계자는 “샌디에이고와는 2008년부터 업무제휴를 맺고서 활발한 교류를 벌여왔다. 그러던 차 전지훈련지를 물색하던 우리에게 샌디에이고가 흔쾌히 ‘우리 구장을 쓰라’고 했다”며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오키나와를 떠나 미국 본토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통 MLB 구단이 소유한 전지훈련장을 한국이나 일본구단이 사용할 경우 비용은 15만 달러(1억 7천만 원)에서 20만 달러(2억 3천만 원) 사이다. 재미난 건 샌디에이고에서 이 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소문이다. 니혼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노코멘트’했지만, 한국 구단의 애리조나 전지훈련지를 소개해주기도 한 MLB 관계자는 “그 소문이 사실”이라며 “샌디에이고가 니혼햄에게 ‘무상으로 훈련지를 빌려줄 테니 부담없이 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올 초 미국 애리조나 샌디에이고 전지훈련장에서 스프링캠프를 진행한 두산(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그렇다면 어째서 샌디에이고는 그 돈을 포기한 것일까. 업무 제휴를 맺은 자매구단 격인 니혼햄에 대한 샌디에이고의 ‘통 큰 배려’였을까. MLB 관계자는 “순전히 오타니 때문에 샌디에이고가 선심을 쓰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MLB 구단 입장에서 15만 달러 정도는 큰돈이 아니다. 그러나 그 돈을 아무 이유없이 포기할 구단은 거의 없다. 아무리 자매구단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정작 샌디에이고가 니혼햄에 전지훈련지를 무상 임대하기로 한 건 순전히 오타니 때문이다. 샌디에이고는 오타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팀이다. 특히나 구단주인 오말리가 오타니를 매우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오타니가 보름가량 자기 구장에서 운동한다면 샌디에이고는 아무 제약없이 그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샌디에이고 입장에선 매우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그 기간에 오타니의 환심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니혼햄도 샌디에이고의 목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목적을 잘 알고 있기에 니혼햄에서도 샌디에이고에 선진야구 기술 전수 등 다양한 요청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니혼햄이 애리조나 샌디에이고 구장을 사용하면서 엉뚱하게 피해를 본 팀이 있다. 바로 두산이다. 두산은 올 초 애리조나 샌디에이고 구장을 전지훈련지로 활용했다. 그 덕분인지 두산은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았다. 구장 환경이 좋아 두산은 애초 샌디에이고와 장기 계약을 맺으려 했다.
그러나 샌디에이고 측에서 난색을 표하며 장기 계약이 무산됐다. 두산 관계자는 "얼마 지난 뒤 샌디에이고가 니혼햄에 구장을 빌려주려고 우리 쪽에 완곡하게 재계약 불가 의사를 통보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좀 더 시간이 흐르고서 샌디에이고에서 니혼햄에 구장을 빌려주려는 이유가 오타니 탐색 때문이란 소릴 들었다"고 전했다.
내년 초 니혼햄이 샌디에이고 구장을 쓰면서 두산은 다른 훈련지를 물색해야할 형편이다. 다행인 건 두산이 새 전지훈련지 물색을 위해 잘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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