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1894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중국 전승절 열병식은 장관이었다. 삼군 의장대가 121보를 걸어 오성홍기를 게양했다. 한 걸음마다 격동의 역사에 스민 피가 솟구쳤다. 그것은 ‘1894’로부터 누적된 중국의 울혈을 이제야 풀었다는 대륙의 선포였다. 1894, 환자가 된 동양의 거인이 신흥제국 일본의 일격을 맞아 인사불성이 된 해,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는 자존심을 파묻고 고난의 장정을 시작해야 했던 해였다. 20세기 중국은 세계 국가들이 겪었던 참상의 박물관이었다. 제국 분할, 침공, 내전, 항일투쟁, 대기근, 문화혁명, 그리고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에 이르기까지 121보(步)는 파멸에서 재기에 성공한 새 생명의 드라마였다.

 시진핑 주석이 말한 ‘위대한 부흥’에는 그런 회한이 스며 있다. 그가 외쳤다. “봉황열반 욕화중생(鳳凰涅槃 浴化重生)”, 봉황이 자신을 불사르고 더 강하게 부활한다고. 중국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장엄한 보고였지만 그 창 끝은 일본을 겨냥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1894는 중국이 아시아의 화근이라는 황화론(黃禍論)을 서양 제국에 입증해 보인 해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고 서양적 동양을 구축하려면 ‘야만의 표상’인 중국을 순치해야 한다고 했다. 청일전쟁에 나선 일본군을 문명의 십자군으로 치켜세웠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야(文野)의 전쟁’이라 했고, 도쿠토미 소호는 ‘위대한 전쟁’이라 칭송했다.

 아산만에 상륙한 청군은 괴멸됐고, 평양전투에서 청군의 시체가 쌓였다. 1군사령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황해도를 지나면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전보를 쳤다. “황해도 땅이 비옥하니 일본의 식량창고로 써야 한다”고. 정여창이 이끄는 북양함대는 위해(威海)에서 수장됐다. 1895년 시모노세키에서 이홍장과 이토가 마주 앉았다. 랴오둥반도·대만·펑후열도 할양, 배상금 2억 냥, 4개 성(省) 시항(市港)을 일본에 개방하는 조항에 도장을 찍었다.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는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한다”였다. 15년 뒤, 조선이 식민지가 됐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말했다. “동양화란의 뿌리를 제거했다”고.

 열병식은 세 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중화민족,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전쟁의 비극을 타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 주석의 선언은 지구촌에 대한 반패권주의 약속으로 읽힌다.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이란 공식 명칭과 ‘121보’가 겨냥한 것은 일본에 대한 경고다. 500여 종의 첨단무기 퍼레이드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가 그리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 군사력 과시다. 괌·오키나와를 포함해 기동함대를 타격하는 신형 미사일이 선보였다. 명칭은 둥펑, 동풍(東風)이다. 1894년의 황화(黃禍)가 더 이상 아닌, 문명국의 지위를 회복한 동쪽 바람, 아시아의 태풍.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립해 예의를 표할 때 갈색 선글라스를 끼고 차분히 앉아 있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배려를 타전하라는 뜻이었다. 팔로군과 항일연군이 우리 독립군을 지원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미·일과 중·러 블록 간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동학과 갑오경장이 충돌한 우리의 1894,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제국 탐욕에 의한 역사 단층선, 냉전이 그은 군사 단층선의 그 엇갈린 분절에 올라앉아 눈물겨운 성장을 이룩한 20세기 스토리를 가슴에 품고 대통령은 ‘21세기 지렛대’를 생각했을 것이다.

 미·일과 중·러의 불꽃 튀는 대결을 중화시키는 화해 지대, 인류 문명을 파괴할지 모를 그 독소를 해독하는 평화 지대로서의 한국을 말이다. 가교국가(bridging state)란 양대 블록에 속하면서 충돌의 예각을 완화하는 국가를 말한다. 한국이 바로 엇갈린 분절에 갇힌 나라지만, 그런 조건에서 양쪽 블록을 움직일 자율적 공간이 확보된다는 것은 일종의 기회이자 행운이다. 박 대통령은 부담을 안고 그 기회의 의자에 앉았다.

 미국은 이런 한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하다. 수십 년 쌓은 한·미 동맹의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좀 미심쩍다. ‘민비’ 운운하는 저급한 발언도 역겨운데,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들먹이지 말고 ‘미래지향적 자세를 보여 달라’는 정말 생뚱맞은 주문을 했다. 다른 행성(行星)에 식민을 해도 식민의 패악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해야 인류다. 일본이 21세기 ‘아시아의 화란’이 되지 않을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문명국이다. 일본에 1894는 ‘아름다운 일본’을 포기한 해다. ‘아름다운 일본’을 외치는 아베는 121보를 무엇으로 해석했을까? 반패권주의를 선언한 시 주석의 약속을 지켜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본’이 되라고 끊임없이 조언해야 하는 것도 가교국가의 임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