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가토 전 지국장에 무죄 선고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담은 기사를 보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전 산케이(産經)신문 서울지국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동근)는 17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전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등 부적절하게 기사를 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소수 의견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기사가 허위 사실을 적시하고 있고, 사인으로서의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상황을 일본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사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보통신망법 70조 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에게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쓴 기사가 허위 사실이고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박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작성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가토 전 지국장은 작년 8월 3일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게재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7시간가량 박 대통령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박 대통령이 정윤회(60)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또 기사에서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 관계인 것처럼 표현했다.

검찰은 작년 10월 가토 전 지국장를 기소하면서 ▲가토의 기사가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고 ▲허위 사실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취재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오랜 특파원 생활로 국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사과나 반성의 뜻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었다. 검찰은 지난 10월 29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지난 3월 공판에서, “여러 증거를 볼 때 박 대통령과 정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소문은 허위로 보인다”면서, 변호인들에게 소문의 진위보다 비방 목적이 있었는지 또는 언론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지에 대한 변론을 집중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 기록, 청와대 경호실 출입 관련 공문, ‘세월호 참사 당일 정씨와 점심을 먹었다’는 한학자 이모씨의 증언 등을 볼 때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서 다룬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 정씨가 함께 있었다’는 소문은 허위 사실로 판단된다”며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 관계라는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또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정씨 등을 상대로 취재하지 않는 등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다”며 “가토 전 지국장의 오랜 기자 경력과 한국에서의 4년간 외신 기자 경험 등을 볼 때 소문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은 공적 관심 사안으로서 언론이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비판할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인으로서도 인격권을 갖고 있는데, 가토 전 지국장이 사생활 관련 허위 소문을 신빙성 있는 내용인 것처럼 보도하면서 사인으로서의 박 대통령과 정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에게 박 대통령과 정씨에 대한 비방 목적이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무죄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일본 국민은 최인접 국가인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고 교류가 많아, 박 대통령의 언행도 일본 국민에게 공적인 관심 대상”이라며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지만, 일본 국민에게 최인접 국가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기사를 쓴 것으로 박 대통령과 정씨를 비방할 목적으로 기사를 썼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민주주의제도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공직자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 보장돼야 한다”며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가 우리 국민 입장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소수 의견도 보호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법원 판단 범위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부분”이라며 “가토 전 지국장이 대통령을 조롱하고 한국을 희화한 내용을 기사로 쓰면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은 것은 적절치 않다. 이번 일을 계기로 건전한 언론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법정에는 일본 언론사 기자 등 외신과 국내 취재진, 방청객 100여명으로 북적였다. 이날 선고 공판은 오후 2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재판장이 한 문단씩 판결문을 읽으면, 통역이 일본어로 다시 같은 내용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토 전 지국장은 3시간 내내 서서 선고를 들었다. 선고 공판이 시작된 지 1시간 40분쯤 지나자 변호인이 재판장에게 “피고인을 앉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부장판사는 “나이가 굉장히 많거나 병을 앓는 경우가 아니면 계속 서서 들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장 입에서 ‘무죄’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외신 기자들은 다급히 전화를 들고 법정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