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이 많은 양 취급되는 산단에서, 하도급은 시한폭탄이다. 지난 7월 울산 한화케미칼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는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10년 동안 화학물질 관련 사고로 해마다 평균 95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이중 대부분이 하청업체 노동자다. 최근 화학 사고 숨진 노동자를 보더라도 그렇다. 지난 1월 경기도 파주시에서 있었던 엘지디스플레이 가스누출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3명이 숨지고, 지난 4월 경기도 이천시에서 있었던 에스케이하이닉스 가스누출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3명, 지난 7월 있었던 한화케미칼 울산2공장 폭발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숨졌다.
올들어 발생한 전국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 건수는 상반기에만 벌써 10여 건을 훌쩍 넘긴 가운데 20여 명의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졌다. 화학물질 관련 위험 업무를 하도급을 주는 ‘외주화’가 비일비재한 데다가, ‘갑’의 위치에 있는 원청 업체가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는 관행이 화학물질 사고로 하청노동자가 줄이어 숨지는 데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당시 유한봉 울산고용노동지청장도 울산 공단에서 벌어지는 위험사고 원인이 하도급 체계에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2014년 5월 23일, 산단 기업체 공장장 간담회).
2013년 울산지역 화학물질 사고 발생 87건 가운데 31건은 시설관리 미흡, 35건은 작업자 부주의, 21건은 운반차량에 따른 것이었다. 대부분이 이른바 ‘휴먼 에러’, 즉 인재였던 것이다. 임용순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환경팀 공업연구관은 “(화학공단에서 벌어지는) 사고 원인이 휴먼 에러(불완전 행동)인 경우가 많다. 작업자 실수로 인한 사고가 86~93%에 이른다”고 말했다. 하도급을 주는 구조적 원인이 인명사고를 재생산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하도급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건설산업기본법은 일부 공정에 대해 직접 시공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러한 규제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2013년 대한건설협회가 발간한 민간건설백서를 보면 건설업체에 대한 과징금 사유 중 가장 많은 경우가 ‘직접 시공 의무 위반’ 등 하도급과 관련한 사유였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례 중 하도급 제한 규정을 위반한 건이 32.1%였고, 직접시공의무 위반과 하도급 허위 통보는 각각 27.2%, 9.9%였다.
하도급의 악몽…여수산단 폭발사고
“아우야, 지붕 위에 함께 있던 동지들은 어디갔냐
중만아! 종태야! 재득아!
목놓아 불러도 대답없더만
저 무지막지한 폭발이 지붕뚜껑 함께 날려버렸냐
승필아! 계호야! 경현아!
목놓아 불러도 대답없더만
악마구니 불기둥이 비계발판 함께 태워부렸냐
대답 좀 해봐라 아우야
참말로 모두 데려가 부렸냐”
-민점기 여수산단특별법제정운동본부 상임본부장, 대림참사 1주기 희생자 추모시 ‘하늘 사닥다리’ 중.
여수 국가산단과 울산 국가산단은 닮았다. 당장 눈에 띠는 점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울산시에는 온산국가산업단지와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등 국가산업단지가 2곳 있고, 일반산단이 18곳, 농공산단이 4곳 있다. 이중 국가산단인 온산국가산단과 울산미포국가산단에서 화학물질이 많은 양 취급된다. 2012년 기준으로 보면 여수국가산단(5226만2000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양을 취급한 데 이어 울산미포국가산단은 4073만7000톤, 온산국가산단은 1695만2000톤 취급했다.
전국 국가산단 화학물질 총 취급량(1억2580만5000톤)에 비교해 볼 때, 각각 25.8%, 10.7%를 차지하고 있다. 여수국가산단도 울산의 두 국가산단을 합한 정도다. 여수와 울산의 국가산단 화학물질 취급량은 전국 취급량 절반을 넘긴다. 여수와 울산에 화학물질이 대거 몰려 있는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다.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2013년 3월 14일,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공장에서 화학물질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저장탑이 2차례 폭발한 것이다. 정비 작업 중이던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상을 입었다. 근처에 있던 수십 명이 2차 피해를 입었다. 17명 가운데 15명은 하청업체가 다시 하청을 준 ‘재하청업체’ 소속 초단기 계약직 노동자였다. 이들 노동자는 대림산업의 하청업체인 유한기술로부터 다시 재하청을 준 업체가 모집한 이들이어서, 화학물질 관련 정보 등 현장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위험한 현장에 투입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울산 한화케미칼 폭발사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수국가산단 폭발사고 뒤 경찰은 “(사고가) 저장탑 안에 남아 있던 폴리에틸렌 분말에서 발생한 가스에 용접 불씨가 옮겨붙어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고가 난 3곳의 저장탑에서 다량의 폴리에틸렌 분말을 확인했다”며 “저장탑 맨홀(구멍) 설치를 위한 절단 과정에서 달궈진 조각이 내부의 분말에 닿으면서 부텐 등 가연성 가스가 발생했고, 용접 불씨가 이 가스에 옮겨붙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청업체가 공사 전 저장탑 내부 화학물질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폭발은 애초 하나의 저장탑 안에서만 발생했지만 주변 시설 등에 영향을 끼치면서 근처의 다른 저장탑 안에 있던 가스도 연이어 폭발하는 ‘2차 폭발’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절차를 무시한 작업은 폭발에 재폭발을 거듭한 끝에 인명을 앗아갔다.
하도급은 여수국가산단 폭발사고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작업 현장에서 하도급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재하도급을 일컫는 ‘모작’이 반복되고, 모작이 반복될 수록 재하청업체의 작업 예산은 줄어든다. 예산이 줄어든 만큼 업체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기를 단축한다. 작업을 빠르게 마치려면 절차를 무시할 수 밖에 없다. 화학물질 공장에서 절차를 무시한 작업은 특히 위험하다. 악순환이다.
심지어 하도급은 종종 구두로 이뤄지기도 한다.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사고 당시 희생자들은 누구에게도 고밀도 폴리에틸렌 저장탑 내부 물질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 하도급이 거듭될 수록 노동자들은 화학물질 정보를 인지하지 못한다. 위험은 재하도급이 이뤄질 수록 증폭되고, 노동자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 위험을 안다고 하더라도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쩌면 모르고 하는 게 나을까.
여수국가산단 폭발사고 희생자 중 재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5명은 ‘비계반’이었다. 시설 위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발판을 설치하는 이들을 비계공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일감이 고정적이지 않았다. 매년 하는 정비.보수 작업 때는 일이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일이 없을 때도 있다. 뚜렷한 소속 없이 일감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돈다. 15명 중 대부분이 여수나 전남 지역 출신이지만 일감을 찾아 울산 석유화학단지로 일을 나가기도 했다. 여수라고 해서, 울산이라고 해서, 작업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석택 울산대학교 교수는 “산단에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 수 등 현황을 파악하긴 어렵다”면서도 “석유화학공단의 경우 대략 25% 정도가 하청업체 노동자일 것이고 경우에 따라 40%에 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석택 교수는 “정비 업무 등을 포함해 원래는 원청업체 직원이 가급적 모든 업무를 맡아서 했다. 1997년 외환위기(IMF) 뒤 하도급이 급속도로 이뤄졌다”며 “안전 관련한 부분을 원청업체가 책임지도록 해야한다. 안전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사고 책임도 떠맡기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덧붙이는 말
-
윤태우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