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의 관심과 지원 호소…"한국학교·유치원 늘려야"
"일본의 혐한 움직임은 한국 경제성장에 따른 경계심 탓"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해마다 귀화자가 늘어나 재일동포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적이 바뀌어도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귀화자·신정주자(新停住者)인 뉴커머(New Commer)·국제결혼 가정 모두 재일동포로 포용하려고 문호를 열어놓아 동포사회의 앞날이 주변에서 우려하듯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15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했던 오공태 민단 중앙본부 단장과 정현권 오사카 민단 단장은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적으로 분류하면 재일동포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귀화자와 뉴커머를 포함하면 오히려 늘어나는 셈"이라며 "출신이 다양한 재일동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재일 한인 전체를 대표하는 민단의 중앙본부 단장과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 지역 단장이기에 동포 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먼저 털어놓았다.
"단일 민족주의를 고집하는 일본에서 재일동포는 차별을 피하려고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민단은 배타적이거나 보수적인 정치인과 사회단체를 설득하거나 반대하기보다는 다문화를 수용하고 자유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과의 교류에 더 앞장서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친한 척해도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만 하므로 이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냉각된 이유에 대해 오 단장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일부 정치가들이 잘못이 없다는 식의 돌출 발언을 해서 악화한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경계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5년 전부터 방송과 신문 등 미디어가 일본의 장기 불황과 달리 한국의 빠른 성장 속도에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삼성전자가 일본의 대표적 가전회사인 소니와 마쓰시타를 추월한 사례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일본이 전과 달리 한국을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정 단장은 "양국 관계 악화나 인종차별 시위 등의 영향으로 한식당, 한류 기념품점, 한인 경영자가 많은 파친코점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재일 차세대들이 자긍심에 상처를 받은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두 사람은 양국이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을수록 사이에 끼인 재일동포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징검다리 역할을 그만둘 수 없다며 우호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소개했다.
"한일친선협회 회원과 민단이 공동으로 10월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이벤트를 열려고 합니다. 1천300여 명이 모이는 성대한 행사로 일본에서 정치인 등 3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축하 공연을 위해 일본 최고의 엔카 가수인 후지 아야코(藤あや子)도 섭외했습니다. 한국 가수로는 태진아 씨가 나옵니다."(오공태)
"오사카에서는 매년 11월 3일에 백제 등 고대 한반도와의 교류 모습을 재현하는 '시텐노지(四天王寺) 왔소 축제'를 엽니다. '한반도에서 왔소'라는 뜻을 담은 이 축제는 재일오사카신용조합의 후원으로 1990년 시작했는데, 2000년에 신용조합이 무너지면서 한동안 중단됐다가 2005년부터 일본 대기업의 후원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양국 교류의 상징인 축제라서 오사카 민단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민단회관 내에 축제 사무실을 제공하고 행사 당일에는 재일동포가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정현권)
두 사람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보다 민족교육을 위한 학교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꼽는다. 귀화자를 포함하면 90만 명이 넘는데도 민족학교는 단 4곳뿐이다. 그중에서도 도쿄한국학교는 일본 정규학교로 인정을 받지 못해 학생이 대부분 뉴커머다. 학교 설립 비용도 부족하고 교사도 모자라 모국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오 단장은 당장 민족학교가 필요한 지역으로 고베(神戶), 아이치(愛知), 후쿠오카(福岡), 지바(千葉), 사이타마(埼玉)를 꼽았다.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 유치원을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일 1∼2세대와 달리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 수밖에 없는 차세대에게 국적 유지를 강요할 수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서부터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정체성을 키우게 해서 국적과 상관없이 한민족으로 살아갈 힘을 갖도록 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귀화하거나 일본인과 국제결혼을 하면 일본으로 동화된다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체성이 확고하다면 오히려 일본 속에 친한파가 더 늘어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민족교육의 시작인 유치원이 늘어나야 합니다."

'2015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 오공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단장(좌측)과 정현권 오사카 민단 단장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10/09 14:2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