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황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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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후손들이여! 내가 살해당한 지 벌써 두 갑자의 세월이 지났구려. 오늘은 나의 제삿날이라오. 혹여 부담은 갖지 마시오. 제삿밥을 대접받겠다고 찾아온 건 아니니 말이오. 그럴 염치도 없는 망국의 국모이지 않소.

내가 온 것은 내 영혼의 안식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오. 천국에까지 들리는 일본의 비양심 때문이오. 얼마 전 우익 신문이 자기 조상들의 야만을 뉘우치기는커녕 명성황후인 나를 민비로 폄하하고 우리 대통령에 빗대기까지 했다지요. 여기 천국의 사람들도 치를 떨고 있소.

나의 조국, 대한의 국민들이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 그들은 우리가 화를 낸다고 고개를 숙일 부류가 아니잖소. 저승에 온 히로히토 일왕조차도 후손들의 파렴치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소. 그 사람은 26년 동안 천국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소. 그런 처지에 후손이란 자들이 왕의 얼굴에 흙을 뿌리는 짓을 해서야 되겠소.

배연국 논설위원
가을이 깊었구려. 하늘에서 봐도 삼천리강산의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오. 120년 전 오늘도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었소. 일본 내각의 지시를 받은 검은 무리가 새벽에 궁궐의 담장을 넘어왔소. 무엄하게도 고종 황제의 멱살을 잡고, 세자는 상투를 잡아 질질 끌고 다녔소. 나를 찾겠다고 죄 없는 궁녀들을 마구잡이로 참살했소.

나는 조선의 국모로서 당당히 그들 앞에 섰소. 그들의 칼날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소. 하늘의 영혼을 지닌 국모가 악마의 심장을 가진 이리떼에게 두려움을 느낄 까닭이 있겠소? 그들은 나를 죽인 후 칼로 육신을 찢었소. 그것도 모자라 불로 태워 재로 만들었소. 정작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은 그들인 것 같소. 나의 흔적을 그리도 깡그리 지운 것을 보면 내 육신의 한 조각조차 무섭고 두려웠던 거지요. 그들은 어리석었소. 그런 야만으로 역사의 진실을 덮으려 했다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짐승만도 못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것이 섬나라 일본이오. 나라가 망한 뒤 나의 백성이 당한 고통이야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소. 일제 때 강제노역을 당한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수당조로 99엔을 지급했다는 소식도 들었소. 청춘을 짓밟은 보상금이 고작 동전 두 개라니요. 이곳 천국에서도 일본은 웃음거리가 되었소. 그들의 파렴치에 거듭 놀랄 뿐이오.

일본군이 성노리개로 삼은 정신대 문제만 해도 그렇소. 세계의 지성이 반성을 다그쳐도 그들은 꼼짝도 안 하고 있소. 어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1199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다지요. 19라는 숫자는 참으로 묘하오. 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아이구 아이구(1919)’ 하는 소리가 들렸지요. 나는 어제 똑같은 통곡소리를 들었소. 하늘에까지 들리는 그 음성을 일본이 23년간이나 못 들었다니 그들의 귀가 의심스럽소.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지요. 군사력을 키우고 안보법안을 고치더니 기어이 헌법까지 바꿀 요량인가 보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요.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오. 세계 3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적 위상을 갖추겠다는 거지요.

하지만 일본의 양심을 한 번 보시오. 그들의 양심 순위는 아프리카 후진국보다 못하지 않소.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장군은 자신의 선고일을 가리켜 “일본국 4700만 인격의 근수를 달아보는 날”이라고 했소. 그 후 섬나라의 인구가 두 배 넘게 불었지만 양심의 무게는 한 푼도 늘지 않았다오. 그런 비양심 국가에게 어떻게 하늘이 무력의 권능을 부여할 수 있겠소?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사랑하는 대한의 국민들이여! 오늘 나의 제사상에 푸짐한 음식일랑 올려놓지 마오. 나를 위해 눈물도 흘리지 마오. 눈물은 조국을 위해 아껴 두시오. 마지막 한 방울이 남아 있다면 부디 나라의 앞날을 위해 쓰시오. 내가 천국에서 대한의 영광을 지켜보고 있으리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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