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004년 그들의 화폐에 등장하는 초상화를 다 바꿨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인물, 그것도 1만엔권에 자리잡고 있는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의 초상화는 그대로 두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후쿠자와 유기치를 그렇게 존경하는가.
1835년에 태어난 그는 일본의 유신, 일본의 개화기를 이끈 정신적 대부이다. 일찍이 미국과 유럽을 유람하고 돌아와 일본이 아시아에 머물지 말고 세계열강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민을 계몽시키는데 앞장섰다.
일본의 명문 게이오대학도 그의 손에 의해 세워졌고 이런 계몽사상을 담은 그의 책은 당시 3천만부 이상 팔리는 선풍을 일으켰다.
일본이 아시아를 탈피하기 위해 조선과 중국을 정복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침략적 팽창주의는 오늘까지도 일본의 숨겨진 국가적 기간이 되고 있다.
그래서 화폐의 초상화가 다 바뀌어도 그의 초상화는 지금껏 1만엔권에 자리잡고 있다.
후쿠자와 유기치가 얼마나 우리나라를 멸시했는가는 그의 책과 언행에서 볼 수 있다.
"이런 거지들을 상대로 싸우다가는 벼룩이 옮길 우려가 있다."
"조선은 하루라도 빨리 멸망하는 쪽이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길이다."
그러나 일본에 이와 같은 인물만 있는 건 아니다. 아주 멀리는 임진왜란 때 조선침략에 출전했던 장군 사야가가 있다.
막상 조선땅에 발을 디딘 사야가 장군은 우리 문화와 자연에 반하여 귀화를 결행, 조정으로부터 우록 김씨 성을 하사받고 이름도 김충선으로 개명했다.
그는 당시 왜군의 위력적인 무기 조총에 대한 기술을 우리에게 전수하는가 하면 임진왜란은 물론 북쪽 국경 수비에 10년간 힘쓰다 병자호란때에는 광주 쌍령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지금도 대구 달성 가창면에 그를 기리는 녹동서원(洞書院)이 있다.
일제식민시대에는 후세 다츠지 같은 변호사도 있다. 그는 검사직을 내던지고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을 변호하는데 힘썼다. 결국 그는 자기 나라 일본 사법당국에 의해 구속돼 실형을 살았고 변호사 자격도 정지당해야 했다. 우리 정부는 2004년 그의 유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호소카 유지라고 하는 일본인은 15년이나 '독도종합연구소장'으로 독도가 한국땅임을 주장하며 2002년에는 우리나라로 귀화했다.
일본 국회의원(참의원) 중에도 야마모토 다로 의원은 일찍이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주장했고 지난 9월 18일 아베 정부의 안보법 강행에 '자민당이 죽은 날'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침묵의 항의를 벌이기도 했다.
우스키 게이코라는 할머니는 우리의 위안부 희생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로 뒷바라지를 하며 요즘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찾곤 한다. 뿐만아니라 그는 일본 총리가 직접 위안부 할머니 한분 한분 모두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를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지난 8월 서울을 방문해 서대문형무소 순국열사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일본식민지배를 사죄했다. 빌리브란트 전 독일총리가 유대인 집단수용소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특히 그는 다음달 서울대에서 특강을 하기로 하여 관심을 끌고 있다.
나쁜 DNA를 가진 일본인, 착한 DNA를 가진 일본인이 공존하는 일본!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전히 1만엔권 주인공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후쿠자와 유기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그 뿌리가 지금도 도쿄 거리에서 반한(反韓) 시위에 목청을 높이고 있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