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수시장이 급속히 둔화하면서 제품이 잘 팔리지 않자, 한국 중소업체들로부터 소비재를 납품받아 팔아온 중국 현지 중간 대리상들이 물품대금을 도중에 떼먹거나 지급을 지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사진은 중국 경제를 상징하는 상하이 푸동 지역의 고층빌딩들. 상하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납품받고도 제품 안팔리자
중국 대리상들, 대금 지급 ‘미적’
‘결제 위험’ 경보음 잇따라
기업 59.4%가 외상·송금방식 거래
신용장 개설은 9.9%에 그쳐
중국 대리상들, 대금 지급 ‘미적’
‘결제 위험’ 경보음 잇따라
기업 59.4%가 외상·송금방식 거래
신용장 개설은 9.9%에 그쳐
“얼마 전에 플라스틱제품 8만 달러어치 선적한 뒤 45일 안에 송금 받는 조건으로 중국에 수출했는데 (중국 대리상 쪽이) 판매가 부진하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대금지급을 거절하고 있어요.” 한 국내 플라스틱 제조업체 쪽의 하소연이다.
중국 내수시장이 급속히 둔화하는 탓에 제품이 잘 팔리지 않자, 한국 중소업체들로부터 소비재 물건을 납품받아 팔아온 중국 현지 중간 대리상들이 물품대금을 도중에 떼먹거나 지급을 지연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무역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국 현지 사무소들이 중국진출 한국업체들에 중국 대리상발 ‘대금 회수 차질·불능’ 경보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무역협회 누리집에 있는 ‘중국 비즈니스포털’ 질의응답 게시판을 보면, 지난 8월26일 어느 국내기업 직원의 질문이 올라 있다. “중국업체에 물품을 수출·납품했으나 현지 업체의 폐업으로 대금을 못받았다. 세법상 미수채권을 비용처리하려면 중국업체 폐업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이에 무역협회 상하이지부는 “저희 쪽이 조회해보니 해당 업체는 중국 관련당국에 정상 등록돼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일부러 대금을 떼먹고 종적을 감춘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는 “최근 대중국 수출에서 결제 위험이 높아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국 본부에 보고했다.
요즘 판매대금 회수 차질이 흔하게 벌어지는 요인으로는 중국 내수 둔화에 따른 중국 내 ‘금융 경색’이 꼽힌다. 현지 대리상들은 한국 기업한테 도매로 받은 물건이 다 팔리기 전에 물품보관증을 담보로 거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아 대금을 지불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내수시장이 얼어붙자 중국 내 금융기관마다 대리상에 대한 자금대출을 꺼리는 등 극히 보수적인 접근으로 돌아섰다. 대한상공회의소 베이징사무소는 최근 “실물경제가 둔화하면서 작년 초 이후 중국내 은행마다 국영기업이나 100% 담보가 보장된 기업을 빼면 민영기업과의 신규 자금대여 거래를 거의 끊었다. 오히려 기존 대출자금 회수에 나서는 등 기업금융을 죄고 있다. 이런 ‘돈맥경화’로 ‘앞에서는 돈을 벌지만 뒤로는 밑지는 장사’라는 말이 중국진출 중소업체들 사이에 돌고 있다”고 대한상의 본부에 보고했다. 금융이 얼어붙으면서 이것이 연쇄적으로 우리 중소업체에 ‘매출채권 회수 차질’ 사태라는 불똥으로 튀고 있는 격이다.
중국의 거대 내수시장은 전통적으로 제조업보다 유통업이 우위에 서 장악해 왔다. 중국 30여개 성·직할시마다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총판(대리상)들이 각 지역의 상권 및 영업·유통망을 막강하게 쥐고 있는 구조다. 이 대리상들은 중국 상거래 관습상 즉각적인 현금결제가 아니라 물건을 받은 뒤에 한달 이상 지나 대금을 지급하는 외상거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코트라 정환우 중국조사담당관은 “중국에 진출해 사업할 때 ‘가급적 외상거래를 하지 말라’는 말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 들어가자니 중간에 대리상을 끼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외상거래를 피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베이징지부에 따르면, 우리 기업의 대중국 수출 결제방식에서 59.4%(올 1분기)가 외상 및 송금방식이다. 대금지급을 은행이 안전하게 보증하는 신용장 개설은 9.9%에 그친다. 무역협회가 국내 제조·유통기업 23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중국 내수·유통시장 진출 때 애로사항 1위로 현지에서의 ‘신뢰성있는 파트너(대리상) 부족’(23.7%)을 꼽았다. 신용상태 확인이 어려운 (무역)대리상이 골칫거리였는데, 중국이 ‘신창타이’(뉴노멀)에 들어 소비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대리상발 위험’이 여기 저기 현실화하는 셈이다.
중소업체와 달리 브랜드 파워를 가진 대기업들은 중국에서 대리상을 통한 이런 ‘외상거래 위험’을 몇 차례 경험한 뒤로는 외상거래를 대폭 줄이고 현금거래로 이미 전환하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중국에 법인을 설립해 초코파이를 현지 생산·판매하고 있는 오리온은 현재 현금거래가 90%에 이르고, 외상거래(10%)는 자금력에 문제가 없는 대형마트와 거래에만 허용하고 있다. 이와 달리 중소업체로서는 현금거래만 고집하면 매출감소를 무릅써야 하는데다 중국의 상거래 관행을 무시한채 무턱대고 외상거래를 줄일 수도 없는 처지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