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포 양촌읍에 뿌리내린 방글라데시 난민… '줌머人'을 아시나요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에는 방글라데시인 10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공동체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방글라데시에서 돈 벌러 온 외국인 근로자'라고 생각한다. 종일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서툰 한국어를 말하는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외국 '난민'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줌머인'이라고 부른다. '줌머'는 '화전(火田)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 지역에 사는 11개 소수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줌머인들은 2000년대 들어 한두 명씩 한국에 들어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고, 이곳 양촌읍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우리나라엔 2015년 1월 현재 174만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이 중 난민은 줌머인을 포함해 약 530명이다. 신청자는 1만2208명이었지만 대부분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한국이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1994년부터다. 1992년 12월 '난민 지위에 관한 유엔 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에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법도 만들었다. 유엔난민협약은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자'를 난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살던 땅에 그들의 집과 모스크를 지었다"

지난 8일 오전 양촌읍내 재한줌머인연대 사무실. 철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자 2층에 70㎡ 크기의 옥탑이 나타났다. 부엌을 갖춘 이곳은 평일에는 재한줌머인연대의 사무실로 쓰이다 주말엔 줌머인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한국어를 배우는 사랑방으로 변한다.

이곳에서 만난 초토(34)씨는 지난 2007년 치타공 지역에서 자치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정부군에 쫓겼다. 그는 터키·라오스 등에 피신했다가 그해 9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한국도 식민지 시대를 겪은 적이 있으니 민족 탄압에 대해 더 잘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줌머인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고향 땅', 그리고 자치권이라고 했다. 초토씨는 "우리 할머니도 그 할머니의 할머니도, 우린 아주 예전부터 치타공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치타공은 방글라데시 동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줌머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줌머인들은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운동을 벌일 때 최대 종족(98%)인 벵골족과 함께 싸웠다. 자치권을 보장받는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 자치권을 인정받지 못하자 대정부 투쟁을 벌였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도 줌머족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요인이었다. 벵골족은 이슬람교, 줌머족은 불교를 믿는다.

1970년대 후반 들어 방글라데시 정부는 치타공 지역에 벵골족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줌머족은 대대로 농사 지어왔던 땅을 뺏겼고 그 땅 위에는 벵골족을 위한 집과 이슬람 사원이 지어졌다.

"치타공으로 가 가족들 만나고 싶지만…"

지난 2000년 한국에 온 로넬(44)씨는 4년이 지나서야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방글라데시의 한 구석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한국 사회에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조사관과의 면담을 10번 이상 반복했다"고 말했다.

양촌읍 줌머인 100여 명 중 현재 공식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70여 명. 나머지는 난민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줌머인 난민은 처음엔 남편이 먼저 한국에 도착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뒤, 나중에 부인과 자녀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유엔은 '난민 인정자의 배우자와 자녀 역시 난민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줌머인들의 집은 재한줌머인연대 사무실을 중심으로 300m 근방에 모여 있다. 보통 40~60㎡ 크기 다세대 주택에 월세 30만~50만원씩을 내고 산다. 평일에는 근처 공장에서 일하거나 파출부 등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린다. 생업에 바빠 이들이 모이는 건 주로 주말이다. 보통 한번에 30명이 모이는데 어른들은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한국 생활의 고민을 나누고 아이들은 국어·수학 등 못다 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또 줌머인들의 고유 명절인 '보이사비(4월)'를 준비하기도 하고, '산예 피데' 같은 전통 음식도 해 먹는다.

어쩌면 살아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해선 어떤 마음이 들까. 그들은 "남아 있는 가족을 보러 가고 싶지만 두렵다"고 했다. 2008년 한국에 온 뭄타(28)씨는 "치타공에 있는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식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체포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언젠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다"며 "한국 국적자면 방글라데시 정부가 나를 마음대로 하지는 못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국내에 5년 동안 거주해야 하고, 귀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해가 필요해"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우리 정부가 난민에게 퍼주기식 지원을 한다는 오해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난민이 큰 지원을 받는 건 아니다. 투표권을 제외하고는 내국민과 같은 대우를 받는 정도다. 난민 인정자에게만 따로 주는 지원금·정착금 등도 없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내국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4대 보험 적용을 받고, 내국인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보험료도 낸다.

머나먼 이국 땅에 자리잡은 이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이들은 "우리에게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했다. 줌머인들도 한국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양촌읍에는 약 20명의 줌머인 아이들이 있는데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다. 한국어에 더 익숙하고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기는 아이들이다. 로넬씨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제적 지원보다는 아이들 교육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조언해줄 한국 친구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