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욕없는 문화에서 받는 스트레스
국민성을 얘기할 때 욕하고는 거리가 먼 일본. 그렇기에 일본인들은 욕 없는 자국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욕이라고 해봤자 기껏 바카야로 정도로 바카야로도 한자로 풀어쓰면 ‘말과 사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녀석’이라니, 이건 우리나라에 비하면 욕도 아닌 셈이다.
몇 년 전 일본 나가노의 금강사란 절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전에도 몇 번 다녀왔지만 그때 방문은 조금 특별했다. 아사히신문과 일본 국영 방송인 NHK 방송국, 문예춘추 등 유명 매스컴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 와 기자회견 식으로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본의 아니게 유명인사가 되어버려 여기저기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일본의 모 기업체 회장과 만나기로 한 자리에 그만 15분 정도 늦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 지리가 서툴러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약속만큼은 정확하게 지키기로 소문난 일본에선 그건 작지 않은 사고였다.
“아이쿠, 정말 죄송합니다. 이거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회장을 만나자마자 “스미마셍”을 연발했고 회장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괜찮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순간, 영능력자인 나의 눈엔 그것이 미소가 아닌 분노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바로 그때 ‘일본인들에게도 욕이 있었다면’이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거, 왜 늦었소?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는 거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옹다옹 말다툼을 하면서 화는 자연스레 누그러지고 오히려 화낸 사람은 곧 미안해져 분위기는 이내 화기애애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 회장은 달랐다. 헤어질 때까지 화를 꾹꾹 참아내며 억지로 웃는 것이 만약 내가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참으로 딱해 보였다. 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배출해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냔 말이다. 비단 그 회장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욕 없는 문화’ 때문에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아왔을 게 뻔하다.
욕은 언어의 배설물이며 소통이다. 욕을 하는 순간, 마음속에 꾹꾹 쌓아놓았던 스트레스가 확 풀려 속이 후련해진다. 또한 내 감정이 드러나니 상대방과의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욕에 감정만 섞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욕의 순기능이다. 그렇다고 욕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욕이 좋은 것은 아니나 때로는 욕이라도 해주었으면 할 때가 있다. 결국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처세를 잘 하는 것이리라. 사람 사는 세상은 정(正)이 언제나 정(正)이 아니고, 사(邪)가 언제나 사(邪)가 아니니 그만큼 처세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약력]
넥센히어로즈 프로야구단 구단주대행, 차일혁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서울경찰청 자문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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